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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싫을 수도 있나?

by 이삼오

기타를 제대로 치기 시작한 이 후로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루에 몇 시간씩을 쳐왔다.



기타를 열흘 이상 치지 않으니 금단현상이 몰려왔다.



괜한 짜증과 답답함을 달고 지냈고 항상 날카로워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데이나를 찾아갔다.



"저기... 제가 기타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일렉기타고... 아, 물론 앰프까지 들인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기 병동에 가져와서, 조용히 혼자 방에서 살살 친다는 말이지?"



"아, 네."



"흠.... 그래! 밤늦게는 안 되고."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허락을 받았다.



바로 프랜시스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 기타가 병동 간호사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시는 프랜시스 어머니가 놓고 가셨다.



프랜시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시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신 거 같다. 전혀 서운하거나 이런 마음은 없었다. 그게 나를 배려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셨을 테니까.



센스 있게 악보책 몇 권도 케이스에 넣어줬다.



당분간 별 잡생각 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기타를 칠 생각에 신이 났다.





방에서 희미하게, 아마 바깥 어디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잘못 들었나 생각했지만 분명 선명하게 들렸다. 클래식 곡인 건 알겠지만 막상 제목을 모르는, 그런 유명한 곡 중 하나였다.



소리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분명 다목적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 맞다. 다목적실에 피아노가 있었지... 누구의 연주인지 궁금해졌다.



항상 우울과 절망의 표정에 절어있는 '맥가이버 존'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실력으로 암울한 듯 하지만 산뜻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기의 방에서 나와 속속히 다목적실로 모여들었다.



대부분 마치 못 볼걸 본 거 마냥 놀란 표정으로 감탄하며 존의 연주를 감상했다.



사람들이 있든 없든 존은 의식하지 않고 계속 연주해 나아갔다.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존은 연주를 멈추고 일어서서 조용히, 천천히 다목적실을 나갔다.



갑자기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모두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작 연주의 주인공은 자리에 없었지만 아마도 박수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누군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아까 존이 연주한 곡 이름을 아는 분 계세요?"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어 본 곡인데... 막상 제목은 모르겠네요."



"바그너? 브람스? 하이든? 베토벤인가? 나도 잘 모르겠네요."



"가서 존한테 물어볼까요?"



"물어봐도 소용없는 거 알잖아요. 존은 의사, 간호사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말 안 하는 거..."



한동안 존은 랜덤 한 시간에 피아노를 연주하고는 했다.



짤막한 10분에서 20분 정도 하는 콘서트였다.



여전히 팬(?)들을 몰고 다녔고 역시나, 곡 이름들은 알 수 없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아쉬움과 즐거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도 기타를 방구석에서만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기타를 쳤다.



다목적실이든, 복도에 쭈그려 앉아서든, 카페테리아든, 면회실이든, 굳이 가리지 않고 기분에 따라 옮겨 다니며 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며 한 두 마디씩 건넸다.



무슨 곡이냐, 무슨 곡 아냐, 한 번 쳐줄 수 있겠냐,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좋아했던 곡이다 등 통성명도 안 하고 지내던 사람들도 기타와 음악에 관심을 보였다.



"맥가이버 양반이랑 합주 한 번 하지 그래?"



샤만이 들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글쎄요... 아무 반응 없을 듯한데요."



뭐, 예상대로였다.



존은 내가 말을 걸어도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다만, 아주 옅은 미소로 나를 잠시 바라봤을 뿐.



좋든 싫든 존이 연주할 때 옆에 가서 대충 귀로 듣고 코드 정도 따라 쳤다.



나름 청음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앰프에 연결도 안 된 일렉기타라 내 기타 소리는 나만 찔끔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존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 내가 기타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부터 왠지 병동에 색다른 활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듯했다.



사람들은 음악 얘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의 장이 열리곤 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존의 피아노 연주를 반기지 않았다.



셀프 욕쟁이 트리샤 아줌마였다.



자기한테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라고 투덜댔다.



간호사한테도 피아노를 못 치게 할 수 없냐고 했지만 늦은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길게 연주하는 것도 아니어서 뭐라 하기가 좀 그렇다고 했다.



이 상황을 본 카를로스가 한마디 했다.



"저 망할 놈의 할망구 진작에 알아봤어. 속이 완전 베베 꼬여서... 음악을 대놓고 싫어한다는 건 인간이 아니야."



"아니면 피아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나 보죠."



"길 가다가 피아노가 하늘에서 쿵 하고 떨어져서 거기에 깔렸나? 뇌손상을 입어서 여기 온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샤만의 농담에 빵 터졌지만 샤만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근거리에 있던 트리샤 아줌마가 샤만을 향해서 쏘아 붙였다.



"지금 나한테 하는 얘기예요?!"



"아뇨. 아뇨. 그럴 리가..."



샤만을 잠시 동안 노려본 뒤 트리샤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늘 그렇듯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악의 힘이 위대하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을 때다.



음악은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다.



아주 간혹 누구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때부터이 때 부터 음악치료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음대에 진학해 음악 치료와 교육학, 복수 전공을 선택했다.



다만 치료 쪽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고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뭐든 실제와 이론은 많이 다르다.



어쨌든 음악은 나에게 매우 고맙고 감사한 존재이다.



여전히, 또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힐링과 희망을 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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