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W 병동의 생활은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호사들이 병실을 돌며 약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고정 멤버들이 있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누군가 퇴원을 하고 입원을 했다.
내가 환자들 중 유일하게 꾸준히 말하고 지내는 샤만과 카를로스 아저씨와 함께 하루 일상이 시작되었다.
"야, 쟤는 뭘로 들어왔을 거 같냐?"
늘 그렇듯 카를로스가 말문을 열었다.
"우울증... 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여기 모두 기본적으로 우울증은 깔고 들어오지 않나?"
샤만이 바로 받아준다.
"그렇지. 우울증에 공황장애 더하기 뭐뭐겠지. 감방보다 다양하기는 어렵지."
"수감생활 해봤나요?"
궁금해서 카를로스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어렸을 때 러시아, 아니 소련에서.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내가 왜 거길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냥, 그땐 그랬어. 뭔가 사소한 규율만 어겨도 가둬놓고 보고... 아무 말 없이 가두고 아무 말 없이 풀어주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매우 유쾌하게 대답을 했다. 카를로스는 심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하아, 또 시작 됐네. 이 망할 놈의 금단 현상. 방에 가서 좀 누워있어야겠어."
여기 사람들은 비슷한 점이 있다. 복도나 공용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휙 하고 자기 병실로 돌아가곤 했다.
기분이나 컨디션이 급작스럽게 가라앉거나 불현듯 찾아오는 공황발작을 대처하러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항상 cctv를 예의 주시하는 간호사들은 병실로 가서 환자의 상태를 바로바로 체크했다. 심한 경우에는 안정제를 복용하도록 하고 너무 심한 경우엔 주사를 투여하기도 했다.
종종 병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게 나를 너무 불안하게 했다.
흡사 집에서 듣던 고함 소리와 비슷할 때가 있었다.
병동에서 워크맨과 이어폰은 나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고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배터리가 귀했기에 위급한 상황이나 잠이 안 올 때를 빼곤 그저 음악이 안 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을 뿐이다.
내가 유일하게 바깥바람을 쐐는 시간은 애석하게도 담배를 피울 때였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동시에 독한 연기 한 모금 들이키는 게 상쾌한 쾌감을 주었다.
나는 언제든 자유롭게 병동과 바깥출입이 가능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흡연량은 급격히 줄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출구까지 도달한 다음, 몇십 미터 떨어진 흡연구역으로 가는 게 은근히 귀찮다.
여기엔 환자, 면회객, 의사, 간호사 할 거 없이 다들 한 곳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기에 딱 좋은 곳이다.
많은 애연가들이 그렇듯, 식후 땡을 즐기기 위해 식사 시간 이후 가장 붐빈다.
비슷한 시간 때 모이다 보니 익숙한 얼굴도 제법 보였다.
같은 병원에 입원에 있는 환자들이라는 묘한 소속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스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7W에서 처럼 '뭐 때문에 들어왔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어디가 안 좋아서 입원했어?'라는 말로 대화를 튼다.
데이나를 포함한 7W 간호사 몇 분도 이곳 벤치 두 개에 대형 재떨이가 하나 있는 흡연 구역의 단골손님이었다.
병동에서 보는 데이나와 이곳에서 같이 담배 한 대를 태우는 데이나와의 만남은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확실히 7W 내에서는 환자와 간호사의 경계가 어느 정도 분명한 반면 여기선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하다고나 할까.
데이나는 사적인 얘기도 주로 담배 한 모금과 했다.
올해 세금 환급받으면 디지털 피아노 구매 할 예정이다... 전 남편과 이혼한 지는 제법 지났지만, 전 남편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걱정이 된다... 집이 오래되어서 수리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병동에 있는 환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걱정거리들도 있고 오히려 더 한 것들도 있는 듯했다.
"이런저런 걱정과 생각이 많으신 듯하네요."
"그럼. 호호. 나도 그냥 사람이잖니. 물론 정신병동 간호사지만, 나라고 고민거리가 없겠니. 나도 젊었을 때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서 지금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거 같아."
"젊었을 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지금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우선 내가 한창 젊고 날아다녔을 때는 60년 대지. 히피들의 세상이었지. 히피 하면 뭐가 떠오르지?"
"통기타, 긴 머리, 대마초요."
"호호호호.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 맞는 말이긴 하다. 나도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지. 약물 때문에."
"네?!"
"너무 놀라는데? 호호. 나도 중독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지. 다행히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내 안에 있는 악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지."
"여기서 좋은 분들이라고 하면...?"
"다양한 분들이 계셨는데,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의 도움도 컸지."
"그럼, 데이나도 한 때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거예요?"
"그렇지.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진짜 감옥 같은 느낌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사회가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매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였지. 어찌 보면 지금도 알게 모르게 편향된 시선으로 보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계신 걸 보면... 저한테도 희망이 있는 거겠죠?"
"호호. 이미 여기 들어올 때부터 희망을 찾은 거지."
둘 다 자연스레 담배에 한 대 더 불을 붙인다.
"카를로스도 금단 현상 때문에 고생이 많은 거 같더라고요."
"아마 그럴 거야. 너무나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을 텐데. 모든 걸 감시받던 사회에 익숙해 있다가 정반대인 곳으로 왔으니... 그러나 이런 자유가 정말 좋을 수만은 없었겠지."
"정말 자유로우면... 그냥 좋은 거 아닌가요?"
"글쎄,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갑자기 모든 결정권을 너에게 준다고 하면... 조금은 당황스럽겠지? 설명서대로 하다가 갑자기 설명서 없이 알아서 해라고 한다면.. 뭐 이런 느낌?"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호호. 하여튼 카를로스는 강인한 사람 같아. 잘 이겨낼 거야. 난 쉬는 시간 끝났으니 올라가 볼게. 너도 곧 오렴."
데이나나, 나나, 카를로스나,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라고 안 아픈 것도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거나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태어나고 살아온 과정과 환경은 다 다르지만, 모두가 웃고 울고 걱정하며 슬퍼하고, 아프고 치유받고 하는 인생들이다.
나도 데이나처럼 언젠가 누군가에게 진정 도움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