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닥터 라구와 과거로의 여행...)
"아버지와 어머니, 그러니까 새어머니는 서로 어땠니?"
"한 달 주기로 치면, 실제 전투 10일, 냉전 15일, 그럭저럭 괜찮은 날 5일 정도..."
"한마디로 사이가 많이 안 좋으시구나."
"왜 아직도 같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은 집에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왠지 조만간, 아예 끝날 거 같기도 해요. 그냥, 이제 서로 포기한 듯해요."
"두 분이 항상 안 좋았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1990년, 서울시 은평구)
방 두 개 15평 남짓한 다세대 주택, 이곳이 아버지의 두 번째 신혼집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방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버지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새어머니와 항상 포옹을 했다. 나도 종종 같이 낄 때도 있었다.
쑥스럽지만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화목한 느낌이 불안이 많은 나를 진정시켜 줬다.
나는 아직도 새어머니가 어색하다. 엄마라고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다.
학교 점심시간, 도시락을 까본다. 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
"와, 이삼오는 항상 밥이 한가득이네. 맛있는 것도 많고."
그렇다. 나는 밥 잘 먹는 아이였다. 내 키와 덩치는 또래 평균보다 조금 더 큰 편이었다. 내 도시락은 항상 양도 많았고 햄은 기본에 각종 나물과 볶은 김치 등 먹고 나면 항상 든든한, 정성 가득한 도시락이었다. (이런 정성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1991년, 동생의 탄생)
나에게 동생이 생겼다. 그것도 남동생. 주변에 사촌 형들 누나들이 대부분이라서 동생은 나의 로망이었다.
동생이 병원에서 집으로 온 뒤부터는 내 하굣길이 가벼웠다. 동생을 빨리 보고 싶어서였다.
참 귀엽게도 생겼다. 거의 잠만 자고 있지만 가끔 깨면 나를 보고 쌔근쌔근 웃기도 한다.
종종 울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순한 아기인 듯했다.
당연하겠지만, 어머니는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자연스레 나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 갔다.
나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 자식이 먼저고 우선순위 아니겠는가. 애당초 별 기대가 없었다.
다만, 도시락이 많이 부실해진 게 아쉬웠다. 때로는 안 챙겨 갈 때도 있었으니 밥 잘 먹는 나에겐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이즈음부터 부모가 자주 부딪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말다툼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언성이 커져갔다.
그러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가벼운 욕이 추가되더니 찰진 쌍욕들로 중간중간 공백 없이 전투가 벌어졌다.
내가 들어도 되는 말들인가 했지만 90년대 초반 어른들이 꼬맹이 따위가 뭘 듣든 말든 크게 알바는 아니었을 거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방음에도 취약한데, 고함과 욕설, 중간에 한 번씩 벽을 때리는 듯한 소리 등의 오디오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뭘 때려 부수거나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가뜩이나 불안함을 달고 사는 나인데,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방으로 직행해서 문을 닫았다.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을 가야 할 때가 걱정스러웠다.
지난밤 부모는 또 한바탕 했다.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동생은 울고 있고 어머니의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방까지 들려왔다. 괜히 나가서 마주쳤다가는 나에게 불똥이 튈 거 같았다.
오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아산 할머니집의 요강이 절실했지만 그딴 게 내 방이 있을 리 없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좁은 집에 화장실이 내 방 바로 옆이어서 무사히 후다닥 볼 일을 보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면 미션 성공이다.
계획대로 미션 수행을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 순간...
"너 숙제 다했어?"
하아... 딱 걸렸다.
"아... 이제 하려고요..."
갈굼이 시작되었다. 저번에 안 한 숙제까지 들춰서 융단 폭격이 시작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쌍욕을 듣거나 얻어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 그리고 우윳값 가져갔던 건 냈어?"
"그게..."
"그게 뭐? 어쨌는데? 안 냈어?"
"안 냈어요..."
"그 돈 어딨는데?"
"떡볶이랑 만두 사 먹고... 자판기에서 율무차 뽑아 먹고... 바이더웨이 가서 슬러쉬 사 먹고... 오락 몇 판 하고..."
"야!!!!!!"
큰 고함 소리와 함께 손이 올라갔지만 맞지는 않았다.
아마 이즈음부터 눈치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사람의 얼굴 표정을 말이다.
화가 났는지, 슬픈지, 우울한지... 기쁜 감정은 굳이 살필 필요는 없었다.
네 식구가 사는 좁은 집안에서, 나만의 생존법이었다.
밥도 그냥 내 방에서 먹는 게 편했다.
라면 끓이는 법도 이즈음부터 터득했다.
간단한 요리 같은 것도 시작했다.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 밥을 차려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으니...
그래도 크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해주면 좋은 거고, 안 해줘도, 남이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벽을 쌓기 시작했던 거 같다.
아버지야 미우나 고우나 내 편이겠지만, 나의 법적 어머니인 이 여자는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니니, 경계심을 갖고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조용히나 살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