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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새엄마 (2)

by 이삼오

"딸이 있어요?"



"어! 지금 영국에서 대학 다니고 있어. 올해 들어온다고 했는데..."



"아... 대학생이군요. 농담인 거 알지만, 괜찮습니다. 지금 연애고 뭐고... 생각이 없네요."



"그냥 해본 말이야. 호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네."



"그런데 그렇게 큰 딸이 있어요?"



"내가 낳은 딸은 아니고, 입양한 딸이야. 꼬꼬맹일 때부터 내가 키웠지. 내 일이 너무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게 항상 아쉽지."





낸시는 가족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강한 듯했다.



현재 남편과는 이혼 소송 중이라는데 원래 집은 브라이덜 패스(토론토 최고 부촌, 저택들이 즐비함)에 있다고 했다.



나와의 대화는 보통 백만장자 남편의 험담을 시작으로 해서 본인의 부모님이나 여동생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특히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아버지가 한국 전쟁 참전 때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고 했다.



어떠한 이유로 아들을 전쟁 직후 바로 데려오지 못하고 나중에 캐나다로 데려오려 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의 노력에도 찾지 못한 채 포기하고 항상 당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며 사신다 했다.



지금 파킨슨 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신 거 같다고 했다.



(며칠 후)



낸시의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온 가족이 흡연인이라 병원 밖 흡연 구역에서 오순도순 모였다.



낸시는 나를 부모님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에게는 두 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 뻘이다.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아주 반가워 하셨다.



두껍고 힘 있는 손이지만 떨리는 느낌이 강했다.



"내 아들, 영준이가 또 생각나는구나..."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진 걸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숙연해지자 할머니는 짓궂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렇게 화기애애 한 분위기 속에 면회를 마치고 병동으로 올라왔다.





입양한 딸과 아들.



본인들이 직접 낳지 않은 아이를 온갖 정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게 어린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넘치는 사랑이 바닥에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사명감인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낸시는 실제로 진지하게 나를 입양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 가족이 되는 셈이다.



물론,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또 한편으론, 그러기에는 나의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그래도 아직까지 어느 정도 정이나마 붙어있는 아버지가 걸렸다.



많이 친해졌고, 낸시의 가족과도 친해졌지만 진짜 '가족'이 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다.



모든 순간이 좋을 수가 없고 서로의 안 좋은 모습들도 어떻게든 감싸 안고 갈 수도 있어야 하는, 때론 초인적인 인내심이 요구되는 상황들도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가족도 쉽지 않은데, 수년간 남이었던 사람들이 서로의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다 같이 안고 갈 수 있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그냥, 낸시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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