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는 여러 부류의 환자로 분류된다.
남자, 여자.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상태가 심각하거나 좀 덜하거나.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강제 입원이냐 자의로 입원했느냐이다.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자살 시도가 명백했다면 강제로도 입원이 가능했다.
이 들은 병동 밖을 '절대' 나갈 수 없다.
외부 음식이든 뭐든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받을 수 있다.
다행인 건, 흡연자라면,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병동에 흡연실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이 흡연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입원했으니까. 또 외출이 허용되니까.
강제로 입원한 사람들은 조금 친해지면 여러 가지 부탁을 했다.
가장 흔한 건 외부 음식을 병원 매점, 혹은 병원 근처 편의점에서 사달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예 수고비를 제시하기도 했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감옥은 아니지만, 강제로 여기에서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굳이 뭘 바라고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나도 테리 형님이나 친구들에게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졌으니, 다른 방식으로 갚는다 생각했다.
새로운 환자가 입원을 했다.
제법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그래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듯했다.
금발 스포츠 헤어스타일에 하얀 피부, 살짝 붉은 얼굴... 북유럽 혹은 러시아계 남자 같아 보였다.
이 새로 온 친구는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를 항상 띠고 있었다.
이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계속 응시했다.
기분이 살짝 나빠지려고 하는 찰나에 나에게 다가왔다.
"미안한데... 너 보니까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던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어... 뭔데?"
"브랜드나 맛, 이런 건 상관없고... 감자칩 한 봉지만 사다 줄래?"
생각보다 소박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감자칩 뜯어서 그 안에 소금 좀 왕창 뿌려줄래?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야."
뭐라고? 조금 특이한 요구 사항이었다.
안 될 건 없다만 소금을 어디서... 아! 병원 지하 식당 가면 소금 후추가 배치되어 있지.
제법 오랫동안 병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 어지간한 건 다 알았다.
그나저나, 감자칩 자체가 이미 많이 짠데...
그렇다. 캐나다 감자칩은 전반적으로 다 짜다.
조금 덜 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짜다.
맛도 다양하게 있고 맛도 좋지만 어쨌든, 짜다.
할머니가 캐나다에 잠깐 계실 때 괜히 감자칩으로 밥반찬 해도 되겠다고 말씀하신 게 빈말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금을 과할 정도로 뿌려달라?
입맛이 정말 특이하거나 아니면 살짝 제정신이 아니던가...
아, 맞다. 여기 모두 다들 살짝 제정신이 아니지.
이 친구는 맛있게 우걱우걱 잘도 먹었다.
짜지 않냐고 물어보자 맛만 좋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더 짰으면 한다고 했다.
그냥 소금을 퍼먹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자기는 감자가 좋은 거지 소금이 좋은 게 아니란다.
그냥, 많이 짠 감자가 좋다고 했다.
다른 건 싱겁게 먹는다고 했다.
"야, 짠 감자. 넌 여기에 뭐 때문에 왔어?"
"칼로 나를 찔러서 죽으려 했는데 경찰한테 제압당했어. 얼마 전 너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어서."
나이는 이제 스물인데 본인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충격이 다르겠지만 이 형한테는 엄청나게 크게 다가온 듯했다.
"부모님이 잘 안 해줬어?"
"아니.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엄청 잘해줬지. 그게 더 문제야. 차라리 막 대했더라면 입양된 내 인생이 덜 억울했을 텐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어쨌거나 난 이 형의 감자칩 셔틀을 매일 했다.
나머지 잔돈은 나보고 다 가지라고 했지만 난 꼬박꼬박 돌려줬다.
그렇다고 돌려준 잔돈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냥 묘한 미소만 띤 채로 도로 자기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며칠 후)
친구가 면회를 와서 밖에서 한참 떠들다가 돌아왔다.
이제 슬슬 감자칩 사러 갈 시간인데...
짠 감자 형이 보이질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저기... 그 빡빡 금발머리에 흰 피부에 키는 좀 작은... 그.."
간호사에게 그 형의 행방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린 서로 이름도 몰랐다.
"아! 조금 아까 부모님이 오셔서 데리고 갔어. 아마 다른 시설에 입원할 거 같아."
아, 역시.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홀연히 떠났다.
내 방에 들어왔는데 무슨 노트랑 그 밑에 뭔가가 있었다.
'그동안 감자칩 심부름 해준다고 수고 많았어.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나한텐 정말 큰 거였다.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
세상에...
노트 밑에 20달러 지폐가 열 장이나 있었다.
200달러.
나에게는 거금이었다.
이 걸... 받아도 되는 건가.
돌려주기도 힘들 것 같았다.
지금도 감자칩만 보면 이 형이 생각난다.
세상은 넓고 희한한 입맛을 가진 사람은 많다.
음식에 나름 개방적인 나지만...
그래도, 감자칩에 소금은 절대 못 뿌려 먹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