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미팅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다목적실에서 진행되었다.
환자들은 반원 비슷한 모양으로 의자가 배치되어 앉았다.
심리학 박사님이 앞에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매주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주 된 내용은 '내가 왜 소중한 사람'인지를 다시 상기시키는 목적이 컸다.
세미나 2부는 환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어떤 비틀스 멤버가 가장 뛰어났는지, 토론토 아이스하키팀은 어느 선수를 방출해야 하는지, 병원에서 꼭 제외했으면 하는 메뉴, 혹은 추가했으면 하는...
환자 A: 당연히 폴이 가장 위대한 비틀스 멤버지! 메인 보컬로 부른 노래도 제일 많고, 목소리도 제일 부드러웠고... 무엇보다 가장 멀쩡한 가정을 꾸렸잖아!
환자 B: 쯧쯧... 뭘 모르는 양반이네. 당연히 존이지! 인생이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였잖아. 열성팬에 의해서 암살까지 당한... 캬... 진짜 어마어마 한 인생을 살았지.
환자 C: 둘 다 틀렸어. 링고 스타가 가장 위대한 비틀 이야. 비틀스의 멤버로서 부와 명예를 쥐었고, 상대적으로 주목을 훨씬 덜 받아서 스트레스도 적었을 테고... 제대로 실리를 챙긴 인물이었지!
나: 그나저나 메뉴에 쌀 요리도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탄수화물이 주로 감자, 빵 혹은 파스타이니... 지금도 좋지만 쌀도 메뉴에 포함되면 훨씬 더 밸런스가 좋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동양인이라서 꼭 쌀을 찾는 건 아니지만.
환자 A: 쌀, 좋지! 그리고 음식이 더 다국적이었으면 해. 전형적인 북미식, 아니면 이탈리안이니 조금 질리기도 하고.
환자 C: 그래! 인도나 그리스식도 좀 나오면 좋겠는데... 하긴, 예산에도 안 맞을 거고 병원에서 숯불을 사용한 요리를 할 수도 없고. 여기가 호텔은 아니니까.
환자 B: 어이 박사 양반, 이런 대화들이 뭔 도움이 되는감요?
박사님: 저희가 여태껏 이야기하거나 토론한 것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죠. 그게 병원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관심사가 다르든 의견이 다르든,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죠?
환자 B: 그거야... 우리 집도 아니고, 치료라는 비슷한 목적으로 온 사람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죠. 그러고 보니 이 얘기 저 얘기 참 많이 했네.
박사님: 때론 어떤 환자분들은 병원에 머물면서 자기가 가진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지는 거 같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나는 환자야. 내 몸과 마음에 큰 문제가 있어서 난 여기에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대부분 지배적이더군요.
환자 A: 그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박사님: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내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마음을 편히 가지면 좋죠. 여러분들도 삶에 조금 지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좋겠죠. 여기가 그래도 음식도 나쁘지 않고 규율도 그다지 엄하진 않은 편이죠.
환자 C: 조금 매운 음식도 나오면 좋을 텐데 말이죠!
박사님: 하하. 아무래도 병원이라서 많이 매운 음식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쌀은 좋은 선택지인 것 같구나.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
그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그저 잠시 맘 편히 쉬다가 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계속 인상 쓰고 불쌍한 척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될 듯했다.
평생 그리 살 순 없으니.
모두가 내심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평생 '정신 병자' 혹은, '정신 이상' 이력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아닐까.
한편으론, 모두가 용기 있는 자들이다.
잘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며칠 뒤)
환자 C: 야! 오늘 저녁 메뉴 뭔지 알아? 닭고기랑 쌀밥이야. 좋겠다! 나도 쌀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