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룸메이트

by 이삼오

처음 입원부터 지금까지 나의 담당 간호사는 데이나였다.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도 칠 줄 알고, 나와 생일도 같고, 흠, 같은 담배를 피우고...



이제 다른 간호사로 배정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담당 간호사는 길어야 2주에서 3주 정도고 다른 간호사로 로테이션이 되는 구조였다.



나는 매우 아쉬웠지만, 그래도 병동에서 항상 마주칠 것이고 다행히 나는 다른 간호사들과도 이미 친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늦은 오후)



데이나와 담당 환자와 간호사로 마지막 담배 타임을 가지려 밖에 나왔다.



"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고 하니까 큰 걱정은 안 되네. 그리고 알지? 얘기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계속 같은 공간에서 머무를 것이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너한테 룸메이트가 생겼어. 그런데, 너랑 같은 한국인이던데. 나이는 너보다 많고... 너랑 상당히 비슷했던 거 같아. 외모며, 말투며."



응? 룸메이트라고?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한 번도 룸메이트가 없었다.



병동에 몇 주 씩 있다가 보면 꼭 한 번쯤은 누구나 룸메이트가 생기던데 나는 희한하게 없었다.



병원에서 배려를 해준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룸메이트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내게 없었다.



그나저나, 한국인이라고? 나랑 닮아?




다시 입원하고 나서 나는 주로 식당이나 공용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항상 방에서 혼자 지내는 게 편했는데 왠지 그럴수록 잡생각도 많아지고 답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룸메이트가 궁금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중앙 분리 커튼에 처져있었고 발이 빼꼼 보이는 걸 보아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듯했다.



내가 들어가서 인기척을 보였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 끝난 한 참 후, 흡연구역)



익숙하지 않은 비주얼의 한 남성이 내가 앉아있는 벤치 쪽으로 왔다.



"저기... 제 룸메이트 되시죠? 저는 김 00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흠, 데이나가 분명 나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크고 덩치는 훨씬 컸다. 머리는 내가 훨씬 길었고 (거의 목까지 오는 긴 머리였다), 이 분은 특이하게도 얼굴에 큰 점이 있었다.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수염 없는, 매우 깔끔한(?) 임꺽정...



첫인상은 선해 보였고 말투도 상당히 나긋나긋했다.



백인에 옛날사람인 데이나의 눈에는 아시아인 구분이 쉽지만은 않았나 보다.



담배를 한 두 모금씩 빨면서 서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했다.



나이는 스물다섯, (놀랍게도) 유부남이었다.



정확한 사유는 말을 안 했지만, 자살 충동이 심하게 느껴져서, 그 감정에 압도되어서, 실제로 최악의 직전,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도 잡아보자 하는 심정으로 입원을 결심했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형님, 여기에 더 계실 건가요? 그럼 병동에 좀 다녀올게요. 너무 밖에 오래 있어서 알려야 할 거 같아서요. 또 추운데 담요도 들고 올게요."



언제 봤다고, 한 시간 만에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국말을 해본지가 오래전이어서 그런지 첨엔 조금 버벅대다가 입이 풀렸다.



얼마 전 아버지와의 대화는 거의 예, 아니오의 단답형 인터뷰였으니 입이 풀렸을 리 없었다.



줄담배를 대 여섯 개비 정도 태우던 중 어느 센가 우리 앞에 낯선 여자가 앞에 섰다.



짧은 곱슬머리의 앳되어 보이는 백인 여성이었다.



'용건이 뭐지?'



이 형님은 침착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더니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다.



"이쪽은 내 와이프야. 잠깐 와이프랑 얘기 좀 하고 올게."



아무래도 이 형님이 정신 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온 모양인데... 둘은 놀랍게도 침착, 아니 상당히 평온해 보였다.



(몇 분 뒤)



"아무래도, 난 그냥 퇴원해야겠어. 와이프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아직 할 일도 많고 해서..."



그렇게 이 형님은 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고 나에게 연락처를 줬다. 나도 내 이메일을 건넸다.



하지만, 이 날 밤 이후로 서로 연락 한 번 안 했다.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이라서 더 기억에 남았던 이 형님은 그렇게 갑자기 와서 갑자기 갔다.



하긴, 이곳은 갑자기 오는 곳이 맞긴 하다.




아주 가끔은,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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