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손

by 이삼오

재입원 첫날밤,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서인지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맘 편하게 쿨쿨 자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내 뒤척거림과 한 숨소리가 컸는지 당직 간호사가 들어와서 물었다.



"잠을 못 자겠니? 아티반 좀 줄까?"



"아니요. 밤을 세더라도... 오늘은 약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네요."



솔직히 밤을 새우더라도 상관없었다.



취침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루 종일 자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의사, 간호사 면담 시간과 그룹 상담은 무조건 응해야 한다.



(다음날 아침)



낸시 엄마를 비롯해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첨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처음에 떠날 때처럼, 다시 돌아와서 만났지만 크게 반갑다거나, 그렇다고 크게 아쉬운 모습도 서로에게서 볼 수가 없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마치 어제까지 같이 있었던 것 마냥 가볍게 아침 인사를 했다.



"굿모닝."



그 누구도 왜 다시 돌아왔는지 묻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돌아올 만하니까 왔겠지라는 눈치였다.



낸시 엄마만 그나마 유별나게(?) 반갑게 맞아줬다.



"이곳에서 말고 밖에서 다시 보자니까... 어이구!"



꿀밤을 한 방 먹일 기세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닥터 라구와의 짧은 면담을 통해서 우선은 뭘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내 마음, 정신을 오프(off)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마음 끄기 프로젝트'



걱정도, 희망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을 늘리는 거였다.



그게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다음날 아침)



'응? 뭐지? 누가 있나?'



잠이 반쯤 깨어서 보니 아직 이른 아침이거나 새벽인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심지어 그 누군가는 펑펑 울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아빠가 여긴 어떻게... 언제 오셨어요?"



나는 놀란 동시에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울고 있다니.



아버지가 우는 걸 처음 본 순간이었다.



"... 네가 여기에 왜 또 왔니! 엉엉!"



왜 또 왔냐고? 그럼 예전에 여기 있었던 걸 알고 있었나?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버지는 잠시 병실을 나와 자리를 비웠고 데이나가 들어왔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 계셨어. 너의 법적 보호자니까 병원에서 연락이 간 거지. 전에도 병원 1층까지 오셨다가 안 올라오고 가셨던 거 같더라."



병동 앞 출구 쪽에서 아버지가 손짓했다. 1층에 내려가서, 밖에서 이야기 좀 하자는 듯했다.



우선 난 병원 밖 한 구석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라 어색해서 그런지, 그 오랜만에 본 곳이 하필 병원이라 그런 건지, 마음이 많이 싱숭생숭했다.



내가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 극도록 엄했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두들겨 맞았을 텐데...



역시나, 우리 둘의 대화는 별거 없었다.



밥을 잘 먹고 다니냐, 아직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 테리 형님은 잘 지내냐...



아버지의 최근 근황은,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나가서 별거 중이라고 했다.



하아, 수년 째 말로만 듣던... 드디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인가...





아까 이른 아침 희미한 기억엔, 아버지는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크지 않은 손이지만 단단했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거의 10년 만에 잡아 본 손이었던 거 같다.



어릴 땐 이 손을 잡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이 손에 이끌려 놀이 공원도 가고, 영화 보러 극장도 가고, 켄터키 치킨 다리도 뜯고, 덕수궁도 가고, 명동 가서 돈까스도 썰었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마법 같은 그런 손이었다.



아, 물론 이 손에 이끌려 죽기보다 가기 싫었던 치과에도 자주 들락날락했지만.



이 손은 내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었던, 또 추억으로 연결해 주는 포털이었다.






이제는 잡을 수 없는 손이 되어버린 거 같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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