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 놓여있은 스테레오의 전원을 켰다.
오지 오스본의 CD가 여전히 들어있었다.
'아... 맞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이거였지?'
"어? 언제 온 거야? 이제 퇴원한 거야? 괜찮은 거냐?"
테리 형님이 집에 왔다.
"아, 네. 뭐 그럭저럭요."
"아하 잘 됐다. 잠깐만 있어봐."
(30분 정도 후)
형님은 한 손에 맥주를, 또 다른 한 손엔 먹을거리가 가득 들려 있었다.
난 맥주 맛도 잘 모르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왠지 술이 고팠다.
"웰컴홈 파티다! 고딩 한테 술 먹이면 안 되겠지만. 아, 먹이는 건 아니지. 난 내 맥주를 사 왔는데 네가 그냥 알아서 빼 마신 거라고 치자. 하하."
참으로 고마웠다.
내가 진정 흔들릴 때 항상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었다.
프랜시스든, 경준이든, 테리 형님이든, 청소년 상담사 피티든, 간호사 데이나든...
그들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와 행동이었을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 한 방울만큼이나 소중했다.
몇 주째 칩거 생활을 했다.
아무에게도 퇴원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입원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현관 앞 담배 피우러 갈 때를 제외하곤, 바깥 아무 데도 가질 않았다.
테리 형님 집엔 온갖 라면과 통조림 등 인스턴트 음식이 즐비했다.
하루에 라면 한 봉지 혹은 통조림 하나를 먹으며 지냈다.
입맛은 없었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 먹었다.
음악 듣고 기타 치고, 음악 듣고 기타 치고...
어느 날부터 기타도 안 쳤다.
음악은 켜 놓거나 영화를 틀어 놓고 있었지만 딱히 집중해서 듣거나 보지는 않았다.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의 먹지 않고 물만 마시고 담배만 피우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몰랐다.
뭐든 하기 싫은 나날이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이 계속될수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똑바로 살려고 하든가 아니면 삶을 포기하든가.
두려움이 밀려왔다.
분명 난 살고 싶은 쪽이었다.
뭔가 정신이 번쩍, 아니면 뭐에 홀린 듯 가방에 짐 몇 가지를 부랴부랴 챙겨 테리형님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병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1층 접수동)
"어떻게 오셨어요?"
간호사가 몇 번을 물어봤지만 말문이 막혔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다시 대기 벤치로 돌아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혹시, 예전에 7W에 있지 않았니? 오다가다 몇 번 본 거 같은데. 혹시... 다시 온 거니?"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데이나였다.
데이나를 보자마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잘 왔다. 잘 왔어. 같이 올라가자."
데이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덤덤하게 나와 같이 병동으로 올라갔다.
"마침 네가 쓰던 방이 비어있네. 오늘은 늦었으니 쉬고, 내일 다시 자세히 얘기하자."
그렇게 계획에 없었던 정신과 병동 시즌2 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