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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원 기타쟁이
30화
그렇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2)
by
이삼오
Jan 9. 2025
"
네?! 뭐라고 예? 그래서 언제 예?"
"정확히 한 달 뒤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장 입시생, 다른 학생들은...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도 원장님 인맥이면 출중한 선생님을 모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제가 가야 할 곳도 한 달로 못을 박았기에...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원장님은 상담실 그 자리에서 담뱃불을 붙인다. 많이 심란한 듯하다. 그럴 법도 하다. 당장 수업도 그렇겠지만 수업 외 학원 잡무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문 열고, 전화받고, 상담하고, 자잘한 청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입시생들도 중요한 시기인데 말입니다."
(내가 지금 담당하는 입시생이 있나..?)
"죄송합니다.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캐나디안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도와 예의라는 게..."
"캐나다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냥 제가 여길 그만두고 말고의 일입니다."
기분이 많이 언짢아진 원장님은 밖으로.
이제 이렇게 한 달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네."
눈도 안 마주친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 학원에서 어떤 존재일까? 유일무이 한 존재일까? 아니면 그냥 대충 교체돼도 큰 공백이 안 느껴질 존재일까? 이런 게 궁금할 정도면, 어찌 보면 그다지 큰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학생들에게 일일이 언제 알릴지 고민이 됐다. 그냥 알리지 말고 확 그만둘까? 그래도 그 건 좀 그렇다. 나와 정말 친했던 학생 대부분은 졸업을 했고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고 있는 시점이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에게는 아주 담백하게, 그래도 얼굴을 어느 정도 알고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울고불고할 때 달래줬던 학생에게는 조금 더 길게, 공교롭게도 내 마지막 수업일에 군입대를 예정인 학생에게는 서로가 절절하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원장님과의 인사는 여전히 냉랭하고 짧게 인사를 주고받기 한 지 어언 한 달, 이제 내 레슨실을 정리해야 할 때 다.
몇 년간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던 책장을 드러내니 온갖 먼지들과 반가운 물건들이 몇 개가 보였다.
기타 피크들, 여분 기타 줄, 못 찾고 있었던 학생이 써준 편지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 알 수 없는 여러 사람들의 머리카락 뭉치, 아주 옛날 폴더폰 시절 쓰던 5-핀 충전기, 사소하지만은 않은 것들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8년 문자나 주고받던 폴더폰 시절부터 해서 2016년 지문 인식 홈버튼까지 사용하는 스마트폰 시대까지 왔으니 시간이 제법 흐르긴 했다.
8월의 마지막 날, 수요일 10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기타 하나와 가방하나를 짊어지고 내 레슨실을 나왔다. 인테리어 작업 할 때, 완성 후 다 같이 청소를 했던 기억이 새록 했다.
학원 홀로 나와보니 입시생들 및 몇몇 취미생들이 서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나 보다. 어색했다.
원장님과의 마지막 인사, 다행히 마지막 인사는 환한 웃음으로 끝이 났다.
뭔가 울컥했다. 빨리 학원을 나와야 할 것만 같았다.
1층 내 차로 와서 시동을 켜고 학원 간판을 올려다봤다.
'이 학원도, 이 도시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그렇게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수많은 인연을 이곳에서 만났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 들은 아주 소수이다. 고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원장님과 나는 서로 맞지 않는 성향의 인간들이
만
나 마지막 한 달을 제외하고 나름 잘 지냈다. 아마 서로 많이 참았을 것이다.
나는 어찌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뮤지션의 삶과 맞지 않았던 거 같다. 칼출근, 칼퇴근, 유연하지만 원리 원칙 중요시 하는 타입이다. 원장님은 한 없이 유연하고 매우 열정적이지만 시간 앞에서는 다소 약한 편이다.
원장님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게 가장 아쉬웠지만... 뭐, 딱히 나와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없는 인연을 억지로 계속 유지해 나아갔다고 해야 할 까나...
그렇게 그다음 날 9월 1일 아침, 바로 새로운 곳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전날 밤 10시에 일을 마치고 바로 다음날 전혀 다른 도시에서 출근이라니... 일 복은 타고난 건가? (일 복 만 타고난 게 아니길...)
아주 간혹 지나가다 보면 학원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는 걸 보아하니, 여전히 운영 중 인
듯하다.
앞에 가서 간판을 올려다본다.
그다지... 올라가 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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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학원
Brunch Book
음악학원 기타쟁이
26
타고나는 것 vs 노력하는 것
27
촛불 하나
28
음악이 좋긴 하지만...
29
그렇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1)
30
그렇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2)
음악학원 기타쟁이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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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캐나다인으로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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