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1)

by 이삼오

학원 여름 엠티 전 날, 학생들은 조를 맞춰, 예산에 맞게 간식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를 누비고 다녔다.



확실히 장보기에 서툴렀다. 과자 하나 사는데도 종일 회의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정작 뭘 살지 고민하기보다는 엠티를 앞두고 있다는 들뜸과 즐거움에 휩싸여 임무 수행을 잊어버린 듯했다.



이번 엠티는 재수생들과 편입을 준비하는 성인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어른들끼리 술파티도 예정되어 있어서 나름 뜻깊은(?) 엠티가 될 것 만 같았다.



이번이 세 번째 엠티인가? 아마도 이번이 나에게는 마지막 엠티가 될 듯하다.



이미 학원에 대한 마음이 떠났기에, 이번 엠티는 어찌 보면 나만의 이별 여행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나름 자타공인 장 보기의 달인인 나는 예전 같았으면 장을 볼 때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전두 지휘를 했었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들 뒤에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뿐이었다.



몇 번 안 되지만,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해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이 첫 엠티인 친구들도 있었고 전부 참여했던 프로 엠티러들도 있었다.



선배들이 밤에 놀거리와 게임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이끌어주며 화기애애 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날씨가 매우 좋았던 탓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해변가로 가서 물놀이를 즐겼다. 확실히 바닷가 동네라 엠티 장소 섭외는 올 해도 어려움은 없었다.



한쪽에서는 바베큐 준비가 한 창이었다. 주로 내가 주축이 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 듯했다. 성인이 된 친구들도 있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도 있었기에 (빡센일은 이 친구가 대부분 리드했다. 역시, 군인은 듬직하다) 나는 장 볼 때와 마찬가지로 멀찌감치 지켜만 봤다.



나만이 정한 '이별 여행', 그래서 그런지 모든 걸 한 발작 뒤에서 지켜만 보게 되었다. 제삼자의 시점에서...



맛있는 고기가 입으로 들어올 때도, 내가 좋아하는 기네스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도 크나큰 행복이 느껴지질 않았다.



여기저기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괜히 왔나?'



저녁을 거 하게 먹은 학생들,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본격적인 액티비티 타임으로 분위기와 흥을 끌어올렸다.



역시, 아직 애들이라 술 없어도 정말 잘 논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구경 중, 바짓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번에 뵈었던 00 학원 부원장 00입니다."



서울에서 온 전화였다.



나의 친한 친구가 오랫동안 강사로 있던 학원의 부원장님이었다. 몇 달 전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나의 고민을 털던 중, 여기 학원 얘기가 나왔었다. 친구는 다른 일로 학원을 그만 둘 예정이었고 자연스레 후임을 물색 중이었다. 그래서 비공식적인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아무 답변 없이 시간이 한 참 흘러서 그냥 잊고 있었는데 연락이 온 거다.



"혹시, 선생님 아직도 생각이 있으신지요? 만약에 그렇다 하시면 가능한 한 빨리 오실 수 있을까 해서요."



"네. 생각 있습니다. 다만, 빨리는 안 되고... 두 어달 정도 여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두 달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도 급한 상황인지라..."



"저도 여기에 오랜 기간 몸 담고 있었는지라... 또 제 후임도 물색해야 하고..."



"저도 학원을 오래 해서 어떤 말씀이신지 이해가 됩니다. 다만 저희 사정도 있어서요. 그럼, 한 달은 어떨까요?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 이따 밤늦게 다시 전화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연락 주세요."



이게 무슨 희한한 상황인가? 나 혼자 이별 여행이라면서 온갖 똥폼 다 잡고 염세주위 철학자 마냥 구시렁거리고 있었는데... 엠티 중 합격(?) 전화라니...



조금 갑작스러워서 살짝 당황했다. 그렇다면, 내가 오케이만 하면, 나는 그렇게 여기를 정리하게 되는 것인가?



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어고 음악이고 나발이고 다 내려놓고 기술을 배워서 어디 아무 데나 취직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 시기 서울에 있는 동기들은 너 늦기 전에 우리가 해보고 픈 음악, 프로젝트로 뭐 하나 해보자고 나를 꼬시고 있던 중 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연락도 왔겠다, 정말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과 설렘이 생기는 순간이었지만 현실적인 걱정부터 앞섰다. 그렇지만 뭐라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술자리 분위기가 한 창 무르익을 무렵, 나 혼자 나와 조용한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화 통화 목록을 본다. '00 부원장'을 누른다.



"네. 부원장님. 올라가겠습니다. 며칠 까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담배 한 대를 문다. 오늘 두 번째 담배인가? 끊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피우게 됐다. 예전처럼은 안 피운다. 한 갑 사면 일주일을 버틸 때 도 있으니...



다음날 아침, 예정대로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했다. 엠티 아침 메뉴는 일본식 카레이다. 이제는 그냥 공식 메뉴가 된 듯했다. 물론 내가 하는 마지막 카레이지만. 원장님도 일찍 일어나 계란프라이를 부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일어난 친구들은 햇반 위에 카레와 계란프라이를 배식받아 자리를 잡고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신김치에 카레 한 숟가락 했을 텐데 입 맛이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주말 포함 휴가 시작이다. 하루라도 빨리 원장님 께 내 신변을 알려야 했다.



당연히, 불편한 마음 한가득 안은 채로 해산 장소인 학원으로 돌아왔다.



"모두 재밌게 놀았고 좋은 추억들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서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



원장님 말을 끝으로 모두 해산했다.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서 푹 쉬십시오."






"저...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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