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의 끝

日, 정성

「명사」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by 조앤

'너는 어떤 행복에 웃고 어느 슬픔에 우는지'

예술을 감상하는 관람객이라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관람객이란 본디 작품과 완벽하게 배제된 타인이자 가장 가까운 청자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은 공명을 품고, 무언의 소통을 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

야마모토 모토이는 독자에게 한 가지의 길을 더 선물한다.

바로 작품을 파괴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야마모토 모토이는 새하얀 소금을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새하얗게 공간을 채운 소금은 꼭 눈송이가 내린 것 같다.

실내에 가득 채운 눈송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흔들리고 바람에 조금씩 휘날린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꼬박 보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다. 소금 한 알 한 알에는 그의 사무친 그리움과 애정 어린 정성이 담겼다.


이렇게 소중히 만든 작품을 그는 기꺼이 파괴한다. 눈처럼 쌓인 꽃은 곧 하얀 폭포가 되고 이내에 바다에 가라앉는다.

그는 도대체 무얼 전하고 싶은 걸까?



1994년 여동생을 잃은 그에게 남은 건 그리움이었다.

야마토 모토이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동생을 위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무와 그리움을 담았다고 했던가.

새하얀 소금으로 그려간 그림은

모두 그리움에서 배어 나왔다고 했던가.

바다로 돌려보낸 그 소금은 결국 사라질 추억이었던가.

그의 작품이 어딘가 애달파 보이는 것은 모두 그 그리움 때문이었다.


어쩌면, 야마토 모토이는 소금이 우리에게 필수적이듯 그리움과 슬픔 또한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슬픔을 가능한 한 빨리 잊기를 바라고, 사람들은 살아가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억지로 슬픔을 잊는다. 우리는 정성을 들여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정성이 소중한 건, 슬픔이 아픈 건 모두 그 흐름이 느리기 때문이다. 앞서 흘러간 시간을 따라잡기에는 슬픔은 한 없이 더디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게 착실히 그리워해야 한다.


그리움이 얼마나 괴롭고 아픈 일인지 그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새하얀 유골을 떠올리게 하는 소금을 통해 깊은 그리움을 토로한다.


한 움큼씩 집어 바다에 뿌리는 행위는 그리움의 극복과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란 바다에 조금씩 슬픔을 묻는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순환한다. 자연 속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고, 함께 공존한다. 우리는 소금을 바다에 뿌리며 믿는다. 언젠가 다시 마주할 그날을 기약하며 기꺼이 소금을 바다에 던진다.


정성 들인 그리움은 우리를 다시금 나아가게끔 만든다. 거대한 소금이 알알이 모여 만든 꽃이 만개하고 작은 진동에 조금씩 그 모양이 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이별을 겪는다. 머릿속으로 그린 떠나간 이의 얼굴은 조금씩 모습이 변한 꽃처럼 달라진다.


우리는 미래의 약속을 아니까,

바다에 돌려보낸 그 기억이

다시 자연을 통해 어떤 모습이라도 찾아올 것을 아니까.


야마모토 모토이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

각기 다른 그리움을 한데 묶어 독려한다.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마음껏 슬퍼하라고.

정성을 들여 애도하라고.





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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