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혼과 외할머니와의 만남

어린 시절 나의 깡촌에서의 새로운 시작.

by 김준

누구나 하나쯤은 자신만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필자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보냈던 모든 사람들을 포옹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본다.


필자의 부모님은 내가 첫 돌잔치를 치렀던 시점에 이혼하셨다. 이때부터 평범에서 조금 거리가 먼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때의 필자는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이별"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때의 어린 나에겐 오로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부터 태어나서 병원 속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진료실의 빛 그리고 엄마아빠, 오로지 "만남" 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이별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라가면서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분의 관계는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셨을 때를 기점으로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쓰나미가 쓸고 간 곳은 초토화되며 그것을 복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나의 인생이 그러하다고 느낀다. 그들에게 나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였을까? 그 당시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에게 소중한 아들이다.


아빠는 이발사, 엄마는 미용사 이셨다. 두 분 다 같은 업종에서 종사하시다니, 이런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다! 외모까지 출중하고 당시 운동을 많이 했던 아빠와 당시 날씬하고 키도 크고 아름다운 엄마는 서로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낮밤 가리지 않고 일하였으며, 아빠는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하고 나머지는 쉬고 싶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엄마는 워커홀릭이었던 것에 반에 아빠는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젊은 아빠는 지금보다 넘치는 에너지로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성"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게 된다.


"가게를 마감 중인 저녁 시간, 정적을 깨며 가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여보 누가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걸까?


아빠: 응 글쎄? 별거 아닐 거야. 영업시간이니까 받지 말자. 술마시자고 연락하는 친구겠지 뭐.


엄마: 혹시 모르니까 다시 전화해서 확인해 봐.


" 아빠가 담배를 태우러 나간다."

" 서늘할 정도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 엄마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 여보, 000에서 어떤 아가씨가 전화가 왔어..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을 찾는데 어떻게 된 거야?


" 아빠는 말이 없다 "


그렇다. 결국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더불어 결국 여자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 시점부터 서로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용서한 걸까?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뱃속에 있었기에 이혼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태아는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뱃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을 오롯이 느낀 나는 모두의 예상을 깨듯, 매우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내가 태어나고 우리 가정의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빠의 소비습관과 도박의 문제로 인해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던 아빠는 경제력이 없던 상황이었다. 아빠는 본인이 갖고 싶던 물건과 술자리에서 엄마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쌓여가고 있었다. 두 분은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물론 엄마는 너무나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우리는 한 번도 경제적으로 여유는커녕, 흔히 말하는 수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빠는 엄마의 카드로 무려 수천만 원대의 오토바이를 구매하고 음주와 도박을 즐겼던 것이었다.

큰 빚을 감당해야 하기에 직장생활로는 안되어 사업을 오픈하였으나 은행 빚뿐만 아니라 사채빚도 있던 아빠였다. 엄마는 훗날 나에게 말했다, "어느 날 낯선 남성들이 가게를 쳐들어와 물건들을 부수거나 압류해 갔다고".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돌잔치를 챙겨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경의를 표한다. 상황이 그러한들 사랑받아야 마땅한 하나뿐인 아들인 나였기에, 그 당시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받았던 나였다.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대화가 이 한마디로 시작했다.


" 여보 우리 이혼하자."


오래도록 참아왔던 한마디를 뱉으며 그들과 나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아빠는 모든 책임을 뒤로한 채 쓸쓸하게 빚더미와 나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나는, 힘든 상황에서 그녀에게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녀 또한 너무나도 나를 사랑했던 엄마였지만 너무 큰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었다. 엄마는 새벽까지 투잡을 뛰었으며,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24시간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때의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 나는 감히 그 아픔을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리고 아빠는 떠나버렸지만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지금의 나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는 두려움과 감정에 복받쳐 서글프게 울었다고 한다.

지칠 대로 지치고 너무 큰 죄책감을 느꼈던 엄마는 큰 결단을 내린다.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게 된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나 지금 형편에 도저히 00을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엄마가 몇 년만 아이를 봐줘 내가 금방 기반을 잡아서 다시 데려올게, 생활비는 조금씩 보내줄게.

창선 서대마을

그렇게 돌잔치를 치른 시점 경상남도 남해 창선으로 보내진 나는 외할머니를 만나 어린 시절 나의 새로운 작은 여정이 시작된다. 그 동네는 매우 깨끗한 공기와 집 뒤에는 산과 숲이 우거지고 앞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펼쳐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을 오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밤늦게까지 산에 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던 나를 외할머니는 매우 걱정하셔서 엄마에게까지 전화했다고 하는 웃긴 사실이 있다. 나는 밤낮으로 밖에서 흙바닥, 숲, 바다를 다니며 놀았다, 누구나 과거 미화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어떻게 됐는지 알 방법이 없던 나는 그저 평화로운 그곳에서 조용한 아이로 커 가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가끔 전화를 했고 외할머니가 대신 받아서 나에게 말했다.


"준아, 엄마가 전화 왔어, 받아봐"

엄마라는 존재를 나의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알지 못했던 나는 무서웠는지 전화를 회피만 했다. 어떻게든 전화를 받더라도 말없이 조용히 있었더라고 한다.."


그 동네에는 내 또래는커녕, 젊은 사람도 없던 노인들로 가득한 고작 인구 70명 정도에 달하는 그 당시 구멍가게조차 없던 매우 작은 마을이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티브이 속 텔레토비와 토마스기차 같은 만화였으며 또랑에 나가면 나를 반겨주는 새하얀 오리들과 산과 바다가 전부였다.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와 거실에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굴 따러 가는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며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집 밖에 나가 걷던 나는 그때였다! 개울가에 돌은 던지고 있던 내 나이처럼 보이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내 나이또래와 한 번도 대화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서툴게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안녕, 너 누구야? 몇 살이야?"


그 친구는 답한다.


"안녕, 나는 현명이라고 해, 너는?"


"나는, 준이라고 해."


"몇 살이야? 나는 7살이야"


"나도 7살이야"


이 대화를 시작으로 나는 처음으로 친구와 대화를 해봤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편안했다. 나와 1분 거리에 살던 현명이와 그날부터 매일 곤충을 잡으며 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걱정 없이 뛰어다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 나는 마냥 행복했던 나는 8살이 되어 창선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창선초등학교는 내가 살던 곳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이마저도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였다는 사실!

이때부터 밝았던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