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너 레전드다.”
“아, 부러워. 너, 나랑 이름 바꿀래?”
“축하.”
“결국…… 그렇게 됐네. 그게 가능해?”
“해미야, 얘기 들었어. 수영부 합격했다며? 너무 축하해, 어려웠다면서…… 엄마도 좋아하시지?”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 공부 열심히 한 보람이 있지? 그것도 다 네가 잘해서 그런 거야.”
해미의 수영부 합격 소식은 바람을 타고 날아간 것 같았다. 해미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그 소식을 알고 있었고, 해미에게 축하 한마디를 건넸다. 그 한마디는 해미가 지난 1년 동안 받은 축하보다 더 많았다. 이제 해미는 어딘가를 가면 축하를 받는 것이 익숙해져서 얼굴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신도 헷갈리는 미소를 얹고 다녔다. 축하를 받았을 때 해미의 반응은 그때마다 달랐다.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감사해요.”
해미는 대부분은 이런 대답을 하거나 웃음으로 넘겼다. 그런데 엄마가 해미의 말을 듣고 한 말에는 그러지 못했다. 집에서만큼은 솔직하고 싶기도 했고, 엄마한테까지 웃으며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은 이제 해미도 힘들었다.
“그래, 잘됐네. 경쟁이 엄청 치열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 붙어, 너희 세었다?”
해미의 말을 들은 엄마는 웃음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이제 너, 망했다. 수영이 얼마나 힘든데? 내가 괜히 서핑하는 줄 아냐? 거기에도 수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근데 난 서핑만 한다.”
해미의 오빠 해준도 가세했다. 해미는 그동안 미소로 참았던 것이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로 변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집에서까지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말해?’
이런 생각까지 들자 해미는 입을 열었다. 정말로 여기서 가지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지 못한다면, 영영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됐어. 어차피 나 수영부 안 할 거거든?”
마음먹은 것과는 좀 다르게 해미의 말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엄마와 오빠는 해미의 말을 그렇게 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하긴, 그게 안 하다고 툴툴거리다가 수영부 신청해서 붙은 사람이 할 말이야?”
“아니, 왜 내 말을 아무도 안 들어줘?”
해미는 물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앞이 살짝 뿌옇게 보였다. 이럴 때는 차라리 물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미는 생각했다. 원래는 잘 때도 절대 안 하던 생각이었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이 났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너 얘기 안 들었다고……?”
엄마는 살짝 당황했지만 해미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기분이 괜찮은 거 같았는데 지금은 왜 이래? 아…… 사춘기 때문에? 이놈에 사춘기, 진짜.’
“왜 저래? 나랑 엄마가 김해미 너 얘기를 들었으니까 김해미 너한테 대답을 하는 거 아냐?”
해미의 말투에서 뭔가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엄마와는 다르게 해준은 아직 엄마와 해미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실실 웃는 해준을 바라보던 해미는 눈앞이 다시 뿌옇게 보이는 걸 느꼈다. 이렇게 할 일이 아닌데……. 하지만 이미 나온 눈물……. 해미의 안에서 감정과 이성이 교차되었다. 하지만 해미는 감정을 누를 수 없었다. 감정을 누르는 것은 어려웠지만 감정이 튀어나오는 건 빨랐다.
“제대로 들었으면 그게 나올 말이야, 강해준? 나 하기 싫어, 싫다고! 수영부든 수영이든 서핑이든 다 싫다고! 그냥 싫은데 왜 자꾸 내 말은 안 듣고 잘 됐다고만 해? 칭찬만 하면 나한테 뭐가 좋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해미는 해준과 엄마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아, 그만 좀 해.”
해미는 방으로 갔다. 이대로 오빠 앞에서 울었다가는 해미가 독립하기 전까지 오빠가 써먹을 수 있는 놀림거리를 손수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들어가라. 들어가서 질질 짜라.”
해미 뒤에서 해준이 말했다.
“아…….”
해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쏟아지듯 누웠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방을 향해서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서도, 수영부를 향해서도, 아무것도 향해서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아주 잠깐 만이면 괜찮을 거 같았다. 해미는 지금 정말 휴식이 필요했다.
어쩌면 자고 나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