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6 연대기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라라라라 딴딴딴!
아이들은 종소리를 신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6학년이 된 뒤로 변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수업 중에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에게 슬슬 눈치를 주고, 저들끼리...
"야 시계!"
"헐."
"왜 안 끝나?"
하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한두 번 일이 아니다. 그래봤자 선생님은 열심히 일하느라(또는 핸드폰 보느라) 듣지도 못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미술이나, 방금 한 '점잇가경'같이 예체능 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선생님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따위의 행동, 아니면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종이 치며 자리에 불난 듯 일어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야, 너 몇 번까지 했어?"
"173이 안 보임."
"야, 너 이거 큐브 맞출 수 있어?"
"네가 어떻게 돌려도 1분 안에 무조건 맞추지."
"아~ 그래? 내가 센다."
하면서 남자애에게 안 보이게 뒤로 돌아서 큐브를 섞는 게 아니라 힘으로 조각을 돌리고, 그거를 빌미로 남자애와 슬슬 썸을 타는 여자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날. 내 눈에는 그 아이들 모두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고, 쉬는 시간의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풀지 않아도 되는 문제집을 굳이 무겁게 가져와 낑낑대면서 푸는 누구와 다르게. 이런 나를 '공부 잘한다'라고 보는 아이들도 내 눈에는 참 이상했다.
사실, 나와 친한 애들이 나한테 '공부 잘한다'라고 하면, 그게 칭찬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다른 애들이 나한테 그 얘기를 한다? 그건 분명히 나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아니면 뭔가 부탁할 게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를테면 단원평가 오답노트라든가...
이런 내가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친구와 노는(썸 타는 것도 포함) 아이들이 부럽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에 속하는 걸까?
하아.
나도 안다. 내 한숨이 저렇게 크게 나오지 않는 걸. 그래서 큰 따옴표를 안 썼잖아?
난 내 단짝 다이앤의 책상에게 눈길을 주었다.
하아.
오늘은 다이앤이 아프다.
다이앤이 아프다 = 난 학교에서 문제집밖에 얘기할 대상이 없다 = 망했다
이 공식은 내 머릿속에서 다이앤이 오늘 학교를 못 간다는 말을 들은 뒤 자동으로 생성된 공식이다. 내 생각은 저절로 오늘 아침으로 향했다.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에 난 내버려 뒀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원래는 난 내 단짝 다이앤을 집 앞에서 바깥 나무를 보며 기다렸다. 내가 먼저 오는 날도 거의 없고, 띵동 하면 재촉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난 *공무술을 다니는데, 오늘 학교 끝나고 가는 날이어서 그 도복을 입고 왔고, 그게 또 검은색이 아니고 현란한 빨간색이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는 최신식이라는 이름값을 했다.
후. (난 원래 벨을 누르기 전에 숨을 내쉰다. 그냥 습관?)
띵동.
그런데 원래 내가 벨을 누르면 부산스럽게...
"야, 루카 너 물 통 챙겨라."
"어~ 빨리 가."
"아, 나 머리끈. 엠마, 식탁 위에 있는 것 좀 줘. 아니, 그거 말고. 아, 진짜."
"아, 오케이."
이런 소리가 오고 간 다음에...
"나 간다."
벌컥, 하고 문이 열린 다음, 다이앤이 나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나고, 다이앤이 나를 나인지 모르고, 나쁜 사람인 줄 알고 무서워하면 무서워했지, 내가 무서워하면은 안 되는 건데, 내가 무서웠다. 그만큼 조용했다. 밖에 서 있는 내가 무서울 정도로. 그런데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다이앤이 문 앞에서 동생 엠마와 얘기하는 것이 다 들린 다는 것이었다.
이 정적에 내가 "야, 나 줄리엣이야. 다이앤?" 하고 말하려는데...
"어? 줄리엣 언니인데?"
하는 엠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아, 언니가 열어."
하는 엠마의 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문은 엠마가 열었고, 문 뒤, 중문에는 다이앤이 눈을 비비며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얘 지금 왜 이러고 있지? 늦잠 잤나? 너무 태평한데?'
하고 버퍼링이 걸린 나에게 다이앤이 말했다.
"아, 줄리엣. 아까 내가 오늘 아파서 학교 못 간다고 얘기했는데..."
아~ 다이앤이 아팠구나.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컨디션이 안 좋긴 했다. 어제 한 숨자라고 했는데 안 잘 것 같았더니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난 아직 로딩 중이었다. '헉, 아파서 어떡해? 빨리 자. 내일 학교 같이 가면 좋겠다.' 하는 말은커녕, 정상적인 말도 못 하고 버벅거렸다.
"어...? 아, 알았어. 어..."
그때 나는 '더 말해야 하는데!'하고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 뒤에 내가 더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안녕'이라고 하고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문을 닫았겠지. 그 문 뒤에 다이앤은...
'내가 아까 문자도 보냈는데 왜 저러지?'
하고 생각했을 테고.
시계를 보았다.
11시 23분. 쉬는 시간이 시작한 지 3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4학년 때 아이들하고 놀 때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갔는데, 이렇게 쉬는 시간에 할 거 없을 때는 꼭 느리게 간다. 차라리 수업시간이 45분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짓궂은 생각을 하고 내 눈은 추첨을 잃었다. 사실 다이앤은 조용한 성격이라 쉬는 시간에도 막 엄청 수다를 떨지는 않고 각자 책을 읽거나 그랬는데, 이렇게 다이앤이 없으니 너무 허전했다. 짝꿍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 다이앤 없으니까 심심하지? 꼴좋다. 너 다이앤에게 맨날 함부로 말하고, 응? 약속 시간 맨날 5분씩 늦고 그러는데 다이앤이 네 곁에 계속 붙어있길 원하냐? 뭐 껌딱지도 아니고. 아니면 혹시 다이앤을 '소유'하고 싶었던 거야?'
하고 난 나에게 욕 아닌 욕을 쏟았다. 솔직히 요즘 계속 약속시간에 늦는 게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폴짝.
교실 앞에는 남자애들 중에서 제일 점프를 잘하는 남자애가 문 위로 손을 올려 매달리고 있었다. 사실 문은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우리 반 애들 중에서 제일 키 큰 내가 하면 그냥 까치발을 안 하고도 달 정도의 높이였지만, 교실에 그것 말고는 더 높은 데가 없어서 아이들은 그 애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걔는 키가 작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난' 무시했다. 왜 내 앞에서 저런데? 뒷 문에서 하지. 아, 왜 내 자리는 하필 맨 앞인 거야.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런데, '나만' 무시했다. 아이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저게 되네!"
"어? 난 그냥 단다! 히히. 키 작은 것들."
"합!"
"나, 할 수 있을까? 근데 나 크롭티 입었는데? 내 배 가려야지."
"남방 빌려줄까? 가리고 단추..."
"아, 싫어!"
"안 할 거면 비켜."
키가 큰 애들은 키를 자랑하려, 키가 작은 애들은 자신의 점프 실력을 자랑하려 앞문에 매달렸다. 거의 줄까지 섰다. 매달리고 나서 다시 하는 애는 한 명도 없었지만, 한 명이 매달리면 자기도 매달려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애들은 생겨났다.
하지만 무엇이든 장점은 있지.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라라라라 딴딴딴!
이런 거에 정신이 팔리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