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8
내 방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부엌은 부엌대로 설겆이 미수행 상태, 옷방은 창고, 침실은 침대 밑으로 삐져나온 이불, 그리고 내 컴퓨터 작업실은 그야말로 일상의 편의성을 위해 수시로 변하는 물건들의 향연이다.
오래된 집. 도시 한가운데 술집 위의 84 제곱미터 방 4개짜리의 원래 사무실인 내 주거지역은 월세집 치고 나의 엄청난 물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럭서리 주택이다.
물론 이 물건들이 다 내건 아니다. 독일에 사는 어머니, 누나, 딸이 한번씩 다녀가면 그들의 물건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세월과 함께 쌓여진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살아오던 20년 동안 나라고 왜 집을 집답게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월세집이란 이유 때문에 벽지 하나 장판 하나를 제대로 수선해 쓸 마음을 못가졌다고 핑게친다.
그리고... 난 이게 편하다. 가끔 찾아오는 가족들의 원성이 있어도 그냥 내가 사는 집인데 왜 남들이... 하면서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이상한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그냥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심한 길치인 것처럼 정리치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시도해본 정리 프로젝트는 15분 정도면 이미 길을 잃고 다른 몰두 대상에 빠져 앞으로 무한히 남은 더 적당한 시간을 염두에 둔 미루기 시전이 일상인 것이다.
나름대로 정리의 기본원칙은 숙지하고 있는 편이다. 우선 불필요한 물건들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 버려라. 좌고우면 하지말고 버려라. 이게 누구나 알고 있는 제 1원칙이다. 한데 이 쉬운 행위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버릴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본 많은 정리치들이 너무나 잘 알 것이고 그 이유를 써볼 필요도 없다. 그냥... 어렵고 아깝고, 어디에 어떻게 처분해야할지 모르고 결국엔 무든 물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단 빈 수납공간을 여러개 만들어라. 하지만 결과는... 수납공간은 계속 비워져 있고 내 물건들은 바닥에 뒹굴어져 있다. 바닥과 책상만이라도 정리해라. 결국 내가 가장 체류시간이 긴 방은 작업실이니 여기라도 보기 민망하지 않게 뭔가 수습된 모습이 중요하지 않겠나. 이 부분은 그래도 여러번 성공한 적이 있다. 깨끗해진 책상위 물건들은 상자 하나에 싹쓸어담았고 바닥의 물건들이 그 상자 위에 겹쳐진다.
일단 마음을 한번 정리해보기로 한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나는 보통 집문을 잠그지 않고 다닌다. 잠그는 행위가 귀찮기도 하지만 어떤 이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나의 집에 들어오더라도 가져갈 만한 물건을 찾는데 실패할거라는 자신감. 내가 도둑에 빙의해서 그 시선으로 살림을 살펴볼 때 욕이나 한심하다는 마음이 들지언정 무언가 가져가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거라는 그 느낌이 확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나를 알고 있는 동료나 지인이 어느날 갑자기 나의 집에 들어올 경우가 생긴다는 상상을 해본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가족이야 원래 알고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직장 동료나 어쩌면 관심있던 여성이 이 집에 들어온다면... 아 이건 좀 심각해진다. 나만의 편의성에 입각한 어지러진 집은 한 순간 평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불가촉의 인물로 나를 바라보게되지 않을까. 혼자 살아온 세월이 긴만큼 나의 편의성이 체화되어 있는 집이 나에게는 안온하지만 나를 잘 아는 제 3자의 시선 앞에 나를 발가벗겨 드러내는 것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이런 마음에서 나는 거의 모든 지인들에게 내 집은 출입제한이라는 언질을 해놓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일이란 알 수 없지 않은가.
결국 내가 정리를 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한 동인은 타인의 시선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합당한 사유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번 주말 드디어 버리고 옮기는 일을 제대로 시작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