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9
혼자 잘 사는 편이다. 정말로.
직장 동료들이 자녀 교육, 배우자와의 소소한 갈등, 주말 가족 계획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그런 얘기들을 남 일처럼 듣곤 했다. 나쁜 뜻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삶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혼자여도 충분했고, 주말도 좋았고, 특별히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 일상은 단순했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로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 뭔가 이상해졌다.
브런치에서 '김치즈맘 서이윤'이라는 작가의 글을 읽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그분의 글이 자꾸 생각났다. 남편을 '구라쟁이', 아들을 '고래', 딸을 '열마디', 자신을 '밴뎅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게 좋아보였다.
그건 단순한 닉네임이 아니었다.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들은 서로를 관찰했고, 그 관찰을 사랑으로 포장했고, 그것을 이름으로 만들었다.
나는... 혼자다.
그런데 더 이상하게 느껴진 건 따로 있었다.
브런치 같은 곳을 보면, 거기선 일상 자체가 스토리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때론 아파하고, 가족 중 한명의 투병생활도 있고, 수능을 100일 남겨두고 악전고투하고, 남편 혹은 아내가 어딘가에 빠져있고, 반려견이 집에서 말썽을 피운다.
개별적으로 보면 이런 것들은 누구나 겪는 그저 일상의 변화 없는 편린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주의 깊게 듣고, 의미를 찾고, 기록하고, 공감할 때—거기서부터 그것은 스토리가 된다. 한 명의 관찰자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스토리의 시작이 되는 거다.
나는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게 글의 힘이라는 걸.
그리고 자꾸 투덜거리게 된다.
내 삶을 내 시각에서 보면 뭐 하나 특별할 게 없다. 극적인 사건도 없고, 가족의 웃픈 순간들도 없고, 아내와의 신경전도 없고, 아이의 성장기도 없다. 하다못해 누군가에게 특별한 닉네임을 붙여줄 만큼 깊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냥... 혼자다.
일상도 단편적이고, 변화도 없고, 스토리도 없다.
글을 쓰기 전까진 이게 충분했다. 나쁜 삶이 아니었다. 그냥 평탄한 일상이었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자꾸만 생각한다. 내 삶에 뭔가 부족하다고.
아, 글을 쓰기로 한 내 잘못이다.
혼자 잘 산다던 사람이 이제는 "나도 스토리가 필요해"라며 투정을 부린다.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고, 극적인 순간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서도 자꾸 신경 쓰인다.
혼자인 삶을 스토리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이건... 글을 쓰기로 한 사람이 겪는 직업병일까?
누군가의 '밴뎅이'가 되고 싶다던지, 누군가가 내게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기를 바란다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글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자꾸만 내 삶을 다른 기준으로 재단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스토리 패턴을 기준으로.
결국 이것도 일종의 스토리긴 하다.
혼자 잘 산다고 자신했던 사람이, 글을 쓰기로 하면서 자신의 삶에 투정을 부리는 거. 부족함을 느끼는 거. 그것도 충분히 스토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지금 당장은 그냥 투덜거리고만 싶다. 왜 글을 쓰기로 했는지, 왜 남들의 이야기를 읽고는 자꾸 비교하게 되는지, 왜 단순한 일상이 갑자기 부족해 보이는지에 대해서.
아, 정말. 글을 쓰기로 한 내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