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기 쉬운 기계들의 사회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7

by 글빛누리


어제 회사 옥상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사무실 전체가 들을 만한 크기였다.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도 함께. 그 동료는 곧 조용히 내려왔고, 우리는 없었던 일처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 뉴스에서 본 '이해할 수 없는' 범죄 사건과 그 외침을 겹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석기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범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석기시대 인간을 떠올린다. 그때도 누군가는 동료의 비웃는 눈빛에 상처받아, 밤중에 몰래 돌을 들어올렸을까? 아니면 수만 년의 진화 끝에 우리 내면의 기계에 어떤 지나치게 섬세한 감각이 새로 장착된 것일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틀린 보복.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동기로 저질러진 사건들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분노로, 누군가는 무시당했다는 수치심으로,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망가진 책임이 타인에게 있다는 왜곡된 확신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보이지 않는 균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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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몇천만 명의 사회 구성원 중 뉴스에 나올 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을.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규율 안에서 마음의 균열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을.

하지만 그 옥상의 외침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중 누군가는 항상 부서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그 정도와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마음의 돌발 상황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비교의 시대, 부서짐의 시대

현대사회는 비교의 틀이 너무 많다. SNS를 열면 누군가의 성공이, TV를 켜면 누군가의 행복이, 길을 걸으면 누군가의 여유가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너는?"

정치 뉴스 댓글창을 보라. 편을 가르고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증오의 언어들을. 그것은 단지 정치적 견해 차이가 아니다. 인정받지 못한 각자의 불안과 분노가 안전한(?) 타깃을 향해 분출되는 모습이다.


진짜 기계가 오는 시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대를 앞둔 지금, 어쩌면 이 '부서지기 쉬움'이야말로 인간과 로봇을 가르는 진짜 분별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로봇은 무시당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해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비교당해도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옥상으로 올라가 소리 지를 이유가 없다. 완벽하게 설계된 기계는 부서지지 않는다. 아니, 부서지더라도 그것은 기계적 고장일 뿐, 존재론적 붕괴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려 애쓰는 이 약함, 이 불안정함, 이 비합리적인 감정의 폭발이 우리를 인간으로 정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머노이드가 아무리 인간처럼 걷고 말하고 생각한다 해도, 타인의 눈빛 하나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연약함까지 재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미래 사회는 이렇게 나뉠지도 모른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며 결코 부서지지 않는 존재들과, 여전히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존재들로. 그리고 후자를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은 어디까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전쟁도 멈추지 않는 인류가 개인의 내면까지 치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인간 존재의 필연성인지도 모른다. 부서지기 쉬운 기계들이 모여 사는 사회.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 사회.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우리는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남는 사회.


그렇다고 무력하게 체념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옥상으로 올라간 그 동료도, 뉴스 속 가해자도, 그리고 어쩌면 나도, 우리 모두가 예상보다 훨씬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조금 더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하는 것. 누군가의 눈빛에 담긴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인정과 따뜻함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임을 기억하는 것.


석기시대에는 몰랐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이 부서지기 쉬운 기계들이 서로를 지탱해주지 않으면, 결국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그리고 로봇이 넘쳐나는 미래에도, 아니 바로 그 미래이기에 더욱, 이 약함을 서로 보듬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온 그 동료는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했다. 아무도 어제 일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건네며 잠깐 눈을 마주쳤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우리가 아직 인간인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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