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6
집에는 잘 쓰지 않는 볼펜들이 무수히 많다. 예전에 싼 맛에 산 볼펜들, 그 성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잘 쓰여질 것 같아서 쟁여놓았던 물건들이 상당히 많다.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노트에 필기할 일이 많아졌다. 눈이 안 좋아지면서 선명하고 매끄럽게 잘 써지는 필기구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집에 있는 많은 필기구들 중에 마음에 드는 한두 개만 반복해서 사용한다. 나머지는 그냥 있다. 서랍 속에서, 상자 속에서, 책상 한구석에서. 선택받지 못한 채로.
그렇다면 이제 더 나은 필기구를 찾아야 한다. 다이소에 가면 또다시 필기구 파는 곳을 둘러본다. 지금 마음에 들어하며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 있으면 또 들고 나온다. 집에 이미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한데도.
이건 필기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옷도 항상 입던 것만 찾아 입는다. 라면도, 노트도, 책이나 양말조차도 늘 사용하던 것들만 사용한다. 나머지 것들은 그냥 있다. 존재만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의 집중화다. 마음에 드는 것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외면받는다. 그런데 외면받는 물건들이 계속 집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것들을 자꾸만 보게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왜 나를 택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선택은 끝난 상태다. 선택되지 않은 것들은 계속 쌓여간다.
이것이 혼란의 정체다. 물건이 많아서 오는 혼란이 아니라, 그 물건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면서 계속 "있게 하는" 것에서 비롯된 혼란.
나는 이제 안다. 지금 집에 있는 거의 모든 한살 넘은 물건들은 결국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다. 주인인 나로부터 한 번 선택받지도 못한 채.
이것이 물건에 대한 가장 큰 배신이다. 내가 그것을 집에 들여온 순간, 그 물건의 운명에 대한 책임이 생겼다. 그 책임은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 역시 책임 있게 끝내야 한다. 죽음을 선언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책임을 외면한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혹시 이걸 버리고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미안함과 아쉬움 속에서.
물건과의 이별은 생물과의 이별과는 다르다. 무생물인데다가 복제성이라는 특성이 우리의 미안함을 어느 정도 들어준다. 어차피 같은 것을 또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복제성이 더 큰 책임을 만든다.
왜냐하면 복제 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그 물건 하나하나를 개별적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같은 게 또 있으니까"라는 무의식적 위로 속에서 나는 그 물건의 운명에 무책임했다. 그것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죽음을 선언하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관리란 여기서 시작된다. 집에 있는 선택되지 않은 물건 하나하나와 개별적으로 마주하는 것. 그것을 외면한 내 선택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을 끝까지 지는 것. 미련과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보내는 것.
이것이 비움이다. 단순히 물건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에 대한 책임을 완료하는 것. 침묵한 죽음이 아니라, 인정하는 이별.
이 과정을 거칠 때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사들일 자격이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전의 선택 실패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왜 선택하지 않았는가. 내가 무엇을 외면했는가. 그 책임이 남아있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이 다음 선택을 더 현명하게 만든다.
여백은 이렇게 생긴다. 물건을 버려서가 아니라, 책임을 완료함으로써. 선택되지 않은 것들과의 개별적 인사를 통해.
그리고 여백이 생기면 비로소 관리가 시작된다. 남은 물건들을 더 명확하게 보게 되고, 그것들이 정말 내가 택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득 찬 공간에서는 불가능했던 이 확인 과정이 진정한 관리의 출발점이다.
집에 남은 선택받은 볼펜 몇 자루. 늘 입는 옷 몇 벌. 늘 먹는 라면 몇 가지. 이것들과의 관계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매번 손에 들 때마다, 나는 그것이 왜 선택받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도 선택받지 못하게 될 때, 나는 책임 있게 그 죽음을 선언할 것이다.
비움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물건과의 관계에 있어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