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5
나를 정의하는 말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나 자신은 멀어졌다.
나를 설명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자유일까.
나는 오늘도 이름 붙이지 않은 나로, 천천히 나 자신을 배워간다.
나는 아직도 MBTI인지 뭔지를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을 네 글자로 나누어 부르며 서로의 성격을 맞춰본다. T다, F다, N이다 하며 웃고, 때로는 그것으로 관계의 온도를 조절한다. 하지만 나는 그 검사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일이 조금 두렵다.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나를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는 일이 점점 더 두려워진다. 살아온 방식과 패턴은 내가 더 잘 안다. 세상에 이름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력도 그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흔하디흔한 사주나 점, 타로조차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나쁜 점괘가 나올까 봐, 지금보다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반쯤은 포기한 마음,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작게 깜박이는 불안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알게 되는 순간, 그 안에 갇혀버릴까 봐.
젊은 날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며 단정 지었던 시절도 있었다.
성실하고, 조심스럽고, 감정에는 약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나를 보호해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말들 때문에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사람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은 단단하지 않다.
그때그때의 빛과 그림자에 따라 모양을 바꾸며 살아간다.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내일의 나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MBTI의 알파벳도 아니고, 별자리의 상징도 아니며, 사주 속 숫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오늘의 생각과 기분과 호흡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 모호함이 바로 나의 생명이고, 그 불확실함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젊을 때는 몰랐던 자유를 배우는 일이다.
더 이상 설명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
세상의 분류표에서 한 칸 비워두어도 괜찮다는 마음.
나는 여전히 나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게 두렵지 않다.
모르는 나로 살아간다는 건, 아직도 나를 탐색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지금 조금은 평화롭다.
규정되지 않은 나로 남아도 괜찮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