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
제11화 축제

by 글빛누리
노래부르는 여성.jpeg AI 작성: 그리그의 솔베이ㅣ 송을 부르는 홍소영

그날 밤, 그들은 오래 말하지 않았다. 몇 마디 말보다 더 긴 침묵이 오갔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마치 둘 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당한 것 같았다.


축제는, 어학원의 마지막 주에 열렸다.
딱히 큰 규모는 아니었다. 교실 몇 칸을 터서 간이무대를 만들고, 학생들이 준비한 음식과 공연을 하나씩 돌아가며 보여주는 평범한 행사였다.

기훈은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가 즐거운 척하는 분위기가 어색했고,
억지로 웃는 사람들 속에서 괜히 스스로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클래스 반장 홍소영 씨의 공연’
작은 인쇄물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기훈은 처음으로 그런 소개글을 유심히 읽었다.

“뭘 하시게요?”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기훈이 묻자 소영은 웃으며 말했다.
“노래요. 아주 조용한 노래.”
“무슨 곡인데요?”
“그리그요. 솔베이지 송. 독일어 가사로 부를 거예요.”

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차분하고, 담담하고, 지독히 외로운 노래.


무대에 선 소영은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작은 조명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비췄고,

그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노래를 시작했다.


Der Winter mag scheiden, der Frühling vergehen, der Frühling vergehn,

der Sommer mag verwelken, das Jahr verweh'n, das Jahr verweh'n.

겨울을 가르고, 봄이 지나

여름도 시들면, 세월은 흘러간다.”


첫 소절에서 기훈은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그 목소리에는 기술도, 무대 경험도 없었지만,
기묘하게 사람을 붙잡는 울림이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아주 오래 전부터 흘러오던 노래처럼.

노래가 끝나고, 조명이 꺼졌고, 긴 박수가 이어졌다. 기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잔잔한 숨소리 사이로 짧게 미소 짓는 모습이 스쳐갔다.

그 순간, 기훈은 알았다. 이건 단순한 무대가 아니었다. 이건 어떤 한 사람의 기억이 불러낸 시간의 조각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은 이제 세번째 단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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