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이 끝난 뒤, 클래스 사람들은 다 함께 소풍처럼 하이델베르크 성과 철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가볍게 웃고 사진을 찍는 분위기 속에서 기훈과 소영은 조용히 무리 뒤편에 서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 무너진 성벽 사이로 푸른 이끼가 내려앉고, 붉은 석재는 오래전 전쟁과 침묵을 품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죠.”
소영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허물어졌는데… 여전히 아름다워요.”
기훈이 천천히 대답했다.
“버티는 건, 형태가 아니라 이야기죠.
이 성은…
자기 이야기를 지워지지 않게 남긴 거예요.”
“그럼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기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리는 철학자의 길로 이어졌다. 숲의 내음과 습기, 먼 도시의 풍경. 한쪽으로는 계곡이,
또 한쪽으로는 고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네카강 다리 끝자락. 황혼이 서서히 강물 위로 스며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그 물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른 학생들은 흩어졌고, 기훈과 소영만이 조용히 서 있었다.
“여기, 좋아해요.”
소영이 말했다.
“언제나 물은 흐르죠.
멈추지도, 되돌아가지도 않고.
그냥 흐르기만 해요.”
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걸 계속 바라보게 되는 걸지도요.”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소영의 숙소 앞, 조그만 테라스에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있었다.작은 와인잔 두 개. 조명이 어둡고,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기훈이 와인 한 모금을 삼키고 말했다.
“처음이에요.
누군가한테 내 얘기를 하고 싶다고 느낀 게.”
소영은 그를 바라봤다.
말없이, 기다리는 눈빛.
기훈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 새어머니, 침묵 속의 성장기. 연극, 실패, 상실.
그리고 죽음.
그의 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저 담담히. 마치 책 한 권을 편 듯, 그렇게.
마지막 문장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제 됐어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요.”
소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느껴졌다.
밤 11시경. 기훈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만 가볼게요.
좀… 걸으면서 정리도 할 겸.”
“같이 갈까요?”
“아니요.
혼자 걷고 싶어요.”
“괜찮아요?”
기훈은 미소를 지었다.
“네.
고마워요.”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은 이제 네번째 단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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