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10화』
요즈음 덜어냄과 비움에 대한 생각이 화두가 되고 있다. 현대 소비사회 집안마다 가득한 소비의 결과에 숨막힐즈음 사람들은 더이상 산물건의 편이성에 흡족해 하지 않고 버릴 준비에 각오를 세운다. 비움의 대상은 집이 되고 집을 정리할 때 가장 먼저 비워질 대상은 옷이나 1년 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나도 홧김에 서툰 비움을 실천하다 소중히 아끼던 TV와 운동기구를 버리고 난 뒤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다. 정작 버려야 할 물건들은 여전히 나의 눈초리를 받으며 불안해 하고 있다.
정말로 비워야 한다 버리고 던져야 한다. 옷, 장식물 뿐 아니라 소중했던 편지, 더 이상 안보는 책, 옛날의 습작노트, 추억의 카드도 대상으로 삼을 것을 정리지도사들은 권장하고 있다. 1년 이상 보지 않았으면 버려라. 이 버림의 명령은 이어서 컴퓨터의 파일이 대상이 되고 급기야는 (복잡한) 생각을 버리는 과정까지 지도된다. 미니멀리즘. 여전히 복잡한 집 한 구석에서 나는 매일 텅비고 깨끗한 집을 꿈꾼다. 필요하면 또 사면돼. 극한의 친절한 소비시스템의 현대 사회에서 없으면 또 사는 행위는 극히 단순하다. 돈만 어느 정도 지원이 된다면…
한데 물건들이야 보이는 대로 결단만 잘 하면 버리고 비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 생각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법, 정돈하기, 체계화하기...
마인드맵으로 생각을 체계화하고, 명상으로 복잡한 생각을 없애는 법, 일잘러의 생각정리 스킬—이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인드맵? 결국 복잡한 생각을 더 예쁘게 복잡하게 만드는 기술. 알록달록한 생각의 거미줄 속에서 당신은 길을 잃을 뿐이다.
명상? 앉아서 복잡한 생각을 가만히 관찰하는 고난도 헬스. 젠 마스터가 되기 전, 다리 저림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뿐이다. 게다가 앉아만 있으려니 온갖 잡생각이 미친 듯이 휘몰아친다. "저녁 뭐 먹지?", "내일 발표 망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정리 스킬? 결국 "Notion에 적고 안 봄" 시리즈 최신판. 당신의 Notion은 마치 디지털 쓰레기통처럼 온갖 미완성된 아이디어와 해야 할 일 목록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당신은 그 목록을 보는 순간,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문제는 버리고 나면… 또 산다는 거지.
그게 옷이든, 인생이든, 멘탈이든, 결국 우리는 다시 '쓸데없이 채움'을 반복하는 소비 인간이다. 비움의 미학을 전파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홀린 듯 미니멀리즘 가구를 사고, 마음을 다스려준다는 명상 앱을 결제하고, 생각을 정리해준다는 책을 또 산다.
그리곤 깨닫는다. 내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는데, 지갑은 텅 비어버렸다는 것을.
집은 깨끗해졌는데 머리는 여전히 마트 창고. 유통기한 지난 추억,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정리를 못 할까?"라는 자책감까지. 없는 게 없다.
진짜 버릴 건 '책상 위의 연필'이 아니라,
"이 생각 꼭 정리해야 해"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더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이러니다.
오늘도 우린, 마음을 비운다는 핑계로 또 뭔가 배우고, 사고, 정리하고, 다시 어지르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하게 비워낸 깨끗한 마음이 아니라, 그저 잡동사니 같은 생각들이 널브러져 있는 우리의 뇌를 그냥 내버려 두는 용기가 아닐까?
우리는 결국 '비움'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한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소비하고, 학습하며, 여전히 충만한 상태를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정한 비움이란, 우리 내면의 복잡함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평화를 찾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니멀리즘 #지쳤다 #정리하다_내_멘탈을_잃음 #비움의_종착역은_지갑_텅빔
사실 비움의 철학, 정리된 생각, 미니멀리즘 이모든 것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단지 이러한 것 조차 너무 트렌드화 하고 강박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일련의 사회화과정이 잠깐 불편했던거죠. 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