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발굽 소리에 깨어나는 대지

-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9화』

by 글빛누리

[상상의 몽골 여행]


새벽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시간을 데리고 온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하늘은 밤과 낮의 경계선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몽골게르의 새벽.png

게르의 문을 조심스레 젖히니.
차가운 공기가 한 움큼의 침묵을 내게 건낸다.
어제 본 별들은 이미 하늘 뒤로 물러가고,
그 자리를 은은한 청회색 빛이 메우고 있다.


고요를 깨뜨리는 첫 번째 소리,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말 발굽 소리.
마치 대지가 심호흡을 하듯
땅속 깊숙이 스며든다


유목민의 말 떼가 초원 위를 지나간다.
그 발굽이 차가운 풀잎을 눌러 적막을 깨어낸다.
밤을 밀어내고
새벽을 맞이하는 의식처럼.

나는 서서히 밝아오는 지평선을 향해 걷는다.
새벽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풀잎에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은 이슬이 맺혔고,
말들은 그 이슬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대지의 첫 인사에 답하고 있다.


초원 한가운데 게르에서
어린 아이가 깨나고 있다.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이 새벽의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알았다.
새벽이란 빛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소리는 언제나
자연의 언어로 우리를 일깨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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