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
제3화 잿빛 교실

by 글빛누리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잿빛 교실.png Ai작성: 잿빛 교실


고등학생이 된 소년의 학교생활은 잿빛처럼 음울한 집에서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은 추웠고, 낮은 지겨웠다.

하교 후, 소년은 빈 교실에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늦가을의 오후는 짧았고, 낮아진 태양은 잿빛 구름 뒤에서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다. 점점 고요해지는 학교 안에서, 소년은 문득 자신이 거대한 공허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상 위에는 누군가 남긴 낙서들이 있었다. "지루하다", "언제 끝나나" 같은 삐뚤빼뚤한 글자들. 교실 한구석에서는 시계가 멈춘 채, 짧게 딸깍거리는 소리만을 냈다.


소년은 책가방을 옆에 두고 책상에 고개를 기대었다.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를 찾아왔다. 엄마는 따스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나 그 기억마저 희미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에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학교 운동장은 비어 있었다.
하얗게 바랜 먼지가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고, 운동장 한쪽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들이 흔들리며 잎사귀를 흩뿌렸다.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년은 그 운동장 한켠에 있는 오래된 벤치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엄마와 손을 잡고 그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작은 손을 꼭 잡아주었고, 소년은 엄마의 따뜻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따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노래도, 손길도, 미소도 모두 사라진 자리였다. 바람만이 빈 운동장을 스치고 있었다.


소년은 다시 교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면,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기다리는 차가운 집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다가, 문득 몸을 굳혔다. 그곳은 따뜻하지 않았다. 누구의 웃음도, 누구의 목소리도 진심이 아니었다.


그는 알았다.
거기에 있는 자신 또한,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밤은 더욱 차가워지고, 낮은 더욱 지루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사라지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죽음』은 이제 막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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