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말들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16화

by 글빛누리


그저 잘난 것 없어 보이던 너가
형편없던 나에게 다가왔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두 사람
하지만 너는 조용히
내 인생 속에 깊은 자국 하나를 남겼다


열 살도 더 어린 너는
마음의 깊은 상처에 시달리며
남의 흉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도 멈추지 못한다


금세 잊어버릴까 봐
방금 한 말을 또 되풀이하는 너
지금 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들을
서둘러 꺼내놓는 너


그런 너의 조잘거림이
왠지 모르게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나는 그런 말들 속에서
너와 나, 우리 둘 다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리고 잠깐 침묵의 시간이 흐르면
너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특별히 알려진 멜로디도 아니다
그저, 아무 말도 없는 시간이
어색했던 걸까


너의 콧노래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작은 강박처럼
들릴 듯 말 듯이 공기를 가른다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네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이 사실이


하지만 나는 끝까지
너의 존재를 인정하려 한다
왜냐하면 너와 함께 걷는 이 평범한 시간이
너의 그 말투와 눈빛이
심지어는 그 조용한 콧노래마저도
무심하게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남자들 간의 우정도 아닌
너와의 이 정해진 시간들이
자연의 흐름처럼 살갑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카테고리에 담을 수 없는
그저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 선물해준 작은 기적


오늘도 너는 내 옆에서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고
작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살아있게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거울 같은 지인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