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메조: 강아지가 된 나 — 21세기판 『변신』[3]

카프카도 몰랐던 진정한 해방의 비밀

by 글빛누리


프롤로그: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되었지만, 나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때마다 궁금했다. 왜 하필 징그러운 벌레였을까? 만약 내가 변신을 한다면, 절대 벌레는 싫다. 차라리 강아지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강아지로의 변신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었다는 것을.


1. 인간으로서의 굴욕: 투명인간의 일상

나는 실업자다. 정확히는 6개월 전 회사에서 "구조조정"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나온 34세 남성이다.

밥상머리에 앉아 있어도 투명인간처럼 취급된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며 중얼거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만 하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며 한숨을 쉰다. "옆집 아들은 벌써 과장이 됐다는데." 동생은 대놓고 말한다. "형,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야?"

말은 안 하지만 가족들의 눈빛은 늘 말한다. "쓸모없는 인간."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래도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매달 25일이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라는 숫자가 내 존재를 증명해주었으니까. 그 숫자는 작았지만, 적어도 나를 이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재정 능력이 없는 인간은 이 집에서 그저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올리는 낭비일 뿐이다.

취업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다. 나는 점점 더 방 안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고, 식사 시간을 피해 라면으로 때우기 시작했다.

이게 인간다운 삶인가?


2. 친구 집에서 본 충격의 장면: 왕같은 강아지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 집에 놀러갔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진다며 억지로 끌려나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내 세계관을 완전히 뒤바꾸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집 강아지 '보리'가 마치 집안의 왕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는 식탁 밑에 앉아만 있어도 자동으로 간식이 굴러들어왔다. 민수 엄마가 "보리야, 배고프지?" 하며 사료를 주고, 민수 아빠는 TV 보다가도 보리가 옆에 오면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민수는 틈날 때마다 보리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해시태그는 #우리집왕자 #세상에서가장귀여워 #보리사랑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보리가 거실 한복판에서 실수를 했을 때였다. 나라면 땅에 묻히고 싶을 상황이었는데, 가족들은 웃으면서 "아이구, 보리야. 화장실이 어디인지 까먹었구나?" 하며 정성스럽게 치워주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인간은 해고되면 버려지지만, 강아지는 오줌을 아무 데나 싸도 여전히 사랑받는다. 이 세상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3. 사랑받는 법, 강아지에게 배우다: 생존의 기술

나는 그날 이후 강아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강아지 영상을 보고, 반려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읽었다. 왜 인간일 때는 사랑받기 위해 그렇게 애써야 하고, 강아지일 때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는 걸까?

관찰 결과, 법칙은 의외로 간단했다.

첫째, 성과보고 대신 꼬리를 흔든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 "이번 달 매출이 얼마", "승진했다",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냥 꼬리만 흔들면 된다. 꼬리 흔드는 데 자격증이 필요한가?

둘째, 회의 자료 대신 눈빛을 교환한다. 인간은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강아지는 그냥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아, 귀여워!" 끝.

셋째, 이유 있는 발언 대신 기분 좋은 짖음을 한다. 인간의 말은 늘 평가받는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근거가 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강아지의 짖음은 평가받지 않는다. "멍멍!" 하면 "우리 보리가 뭔 말을 하려고 하네?" 하며 웃어준다.

나는 깨달았다. 강아지는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4. 신에게 부탁하다: 절망적인 기도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천장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종교는 없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신을 찾겠는가.

"신이시여, 만약 정말로 계신다면 제발 들어주세요. 내일 아침, 저를 강아지로 만들어주소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 가족에게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저도 꼬리를 흔들고 싶습니다. 저도 실수해도 사랑받고 싶습니다. 저도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 가족의 짐이 되었지만, 나는 강아지가 되어 가족의 기쁨이 되고 싶었다.


5. 변신의 아침: 꿈이 현실이 되다

왈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온 소리였다. 어? 내가 지금 짖었나? 급히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평소의 초라한 인간은 없었다. 대신 갈색 털에 똘망똘망한 눈을 한 귀여운 강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꼬리가 저절로 흔들렸다. 이게 바로 꼬리 흔드는 기분이구나. 세상에,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문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어머, 이게 뭐야?" "어디서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가족들이 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아니라 환호가 가득했다. 어머니는 "어머나, 천사가 우리 집에 강아지를 보내줬네!" 하며 나를 품에 안았다. 아버지는 "참 예쁘게 생겼네. 이름을 뭘로 하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동생은 벌써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이력서를 쓸 필요도, 면접 준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식탁 밑에 앉아 있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간식이 굴러왔다.

가족들은 돌아가며 나를 쓰다듬어주었고, 웃으며 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해시태그는 #새가족 #천사강아지 #사랑해.

나는 드디어 이 집의 중심이 되었다.


6. 만족한 강아지의 철학: 존재의 발견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으로 살 때는 재정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거부당했다. 그러나 강아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제 집안의 분위기를 밝히고, 가족을 웃게 만들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아도, 그냥 여기 있기만 해도 모든 사람이 행복해했다.

인간일 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왜 사랑받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그러나 강아지로서는 증명할 것이 없다. 존재 자체가 증명이다.

꼬리를 흔들면 사랑받고, 짖으면 관심받고, 잠들면 귀여워한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삶이 있을까?


에필로그: 새로운 종족의 탄생

나는 꼬리를 크게 한 번 흔들었다.

만족스러운 강아지로서, 나는 더 이상 불안한 실업자가 아니었다. 취업 걱정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졌다. 내일 할 일은 간단했다. 꼬리 흔들기, 산책하기, 가족 기쁘게 해주기.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변신 후 절망했지만, 나는 변신 후 해방되었다.

아, 그런데 잠깐. 지금 이 이야기를 누가 쓰고 있는 거지? 강아지인 내가?

멍멍!

뭔가 이상하지만, 일단 꼬리부터 흔들어보자. 생각은 나중에 하고.


P.S. 혹시 당신도 인간으로 사는 게 피곤하다면, 강아지로의 변신을 고려해보세요. 단, 고양이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받기보다는 숭배받으려고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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