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과정 자체를 사는 나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2

by 글빛누리

정리의 무능력

내 방은 늘 어지럽다. 정리를 못하는 습관이 이제는 성격처럼 굳어져, 나는 그것을 무능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리를 시작하면 언제나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서랍 속, 책장 뒤, 침대 밑에서 꺼낸 물건들이 방 한가운데 무더기로 쌓인다. 처음엔 다부진 마음으로 분류를 시작한다. 버릴 것, 남길 것,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


그런데 문제는 그 순간부터다. 오래된 공책을 펼치면 잊고 있던 메모가 나를 붙잡고, 예전에 읽던 책을 집어 들면 밑줄 친 문장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물건을 만지고, 읽고, 그와 연관된 다른 것을 찾아 헤맨다. 시계를 보면 어느덧 정리할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결국 쌓여 있는 물건들을 대충 방구석으로 밀어 넣고,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정리하는 법을 배우려고도 했다. 정리의 기술, 미니멀 라이프, 버리는 기쁨. 그런 책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들은 명쾌하게 말한다. 우선 버려야 한다고. 일 년 동안 쓰지 않은 것, 설렘을 주지 않는 것, 이러저러한 기준으로 재어보고 버릴 것을 정하고 따로 모아두라고. 그 말이 맞다는 걸 안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막상 쓰레기봉투를 들고 서면 나의 마음은 또다시 미련 속에 허덕인다. 이 물건은 언젠가 필요할 것 같고, 저 옷은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을 때 좋은데. 깨진 머그잔도 펜꽂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몇 년째 입지 않은 옷도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입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다시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간다. 봉투는 가벼워지고, 방은 그대로다.


생각의 미로.jpg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몸 전체를 뒤흔든다.


내 마음의 무질서

내 마음을 정리하는 일도 꼭 그렇다. 의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 가는 것도 많다. 이런저런 기획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어진다. 쓰다 보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 영상을 보다 보면 또 다른 책이 필요해진다. 책을 사러 나갔다가 서점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 이끌려 한참을 서성인다.


지금의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려 해도, 생각은 천 길 만 길로 뻗어나간다. 처음의 생각보다 더 유혹적인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또아리를 튼다. 지금 쓰던 글보다 저 아이디어가 더 재미있어 보이고, 하던 공부보다 새로 발견한 주제가 더 의미 있어 보인다. 집중해야 한다고 다짐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많은 곳으로 흩어진다. 버려야 할 물건을 다시 끌어안듯, 나는 버려야 할 욕망들을 끌어안고 산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금세 어지러워진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그 편안한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 버리고 만다. 손에 쥔 것은 많은데 완성된 것은 하나도 없다. 방 한가운데 쌓인 물건들처럼, 내 마음속에도 시작만 한 것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정리하는 과정 자체를 살아가기

가끔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지, 아니면 그저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인지. 정리되지 않은 방을 보며 자책할 때도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나는 정리하는 과정 자체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건을 분류하다 발견하는 작은 기억들, 책을 읽다 뻗어 나가는 생각의 가지들. 그것들이 비효율적이고 산만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세상을 만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깨끗하게 정돈된 방과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상상해 본다. 그럴 때면 나는 또다시 방 한가운데로 물건들을 꺼내 놓으며,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어쩌면 그 속삭임마저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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