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런 음악 리뷰 #2. New Jeans 1st EP
1. 우리는 아이돌을 ‘가수’ 이상의 존재, 또는 ‘가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아이돌은 노래만 하지 않는다. 편차가 있지만 무대에서 댄서에 가까운 안무를 소화하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지만 ‘비주얼 담당’이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외형 또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예능에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연기를 하며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아이돌을 단순히 ‘노래’로만 소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뉴진스를 이야기할 때 ‘민희진’이라는 인물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돌의 ‘보이는 측면’에 집중한 첫 세대인 민희진은 소녀시대, 샤이니, 레드벨벳 등 SM의 대다수의 아이돌의 전면적인 아트디렉팅을 도맡아 하며 SM을 가장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비주얼 아이돌 강국으로 키워내는데 일조했다.
2. 민희진의 디렉팅 전략은 매우 간단하다. ‘반 발짝 앞선 트렌드를 적용하는 것’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트렌드의 박자를 맞춰 나가면 실패는 하지 않지만, 큰 성공 또한 노릴 수 없게 된다. 큰 성공을 위해선 결국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위치를 선점해야 하고, 많은 기획사와 가수들이 트렌드에 앞서가려는 이유다. 하지만 도전과 실험에 매우 보수적인 대중문화는 소위 ‘한 발짝’만 앞서나가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 시작하고, 대중성보단 작품성에 주목하게 된다. 결국 대중의 입맛과 선도적인 위치 사이에서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 그 타협안에 ‘힙스터’라는 개념을 적용시켜 앞서가는 트렌드를 ‘동경’이라는 아이돌의 가장 근본적인 매력으로 풀어냈다. 쉽게 말해, ‘내가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감각적으로 소화해 따르고 싶은 집단을 만들어낸다.
3. 앞선 트렌드와 힙스터 감성을 모든 대중들이 쉽게 흡수하기란 쉽지 않다. 언젠간 주류가 될 지 몰라도, 현재라는 시점에선 낯선 감성과 스타일이기 때문에 천천히 자연스럽게 녹아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설정한 두 번째 전략이 명확한 타겟층 설정이다. 현재 통계적으로 아이돌 시장에서 가장 큰 소비권을 쥔 집단은 10~20대 여성이다. 소위 ‘스밍’이라 불리는 차트경쟁을 목표로 한 스트리밍 문화가 가장 발달해, 인기차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앨범, 포스터 등 MD소비로 제한되는 남성 팬층과 다르게, ‘손민수’라는 아이돌, 셀럽들의 의상과 액세서리들을 따라 사는 문화가 발달한 여성 팬층은 재화가 충분하다는 전제하에 무궁무진한 판매전략이 적용될 수 있다. 각종 명품 브랜드에서 걸그룹 멤버들을 앰베서더로 선정하는 이유도 이에 연장된다 볼 수 있다. 민희진은 전통적으로 여성팬층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소위 ‘슴덕’이라는 SM에서 기획하는 모든 가수들을 선호하는 집단을 만들어낸 것도 민희진이고, F(x)에 대한 여성들의 매니아적인 지지를 만들어 낸 것도, 레드벨벳을 10대, 20대 여성들의 비주얼적인 롤모델로 이끌어낸 것도 민희진이다. 뉴진스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10대의 선망과 20대의 비주얼적 이상 실현을 동시에 충족시키며 선제적으로 뉴진스만의 감성을 무사히 착륙 시키는데 성공했고, 타겟층들의 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활용해 급속도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4.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뉴진스의 표면적인 인기는 과거 소녀시대나 레드벨벳에 버금가지만,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평하게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앞선 두 그룹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확히는, 대중적인 입지를 넓히곤 있지만 자연스럽기 보단 비집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오히려 평론가와 일부 매니아층에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며 동시에 여성 팬층 위주의 화력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이브와 매우 대조적이다.
5. 결국 모든 결론은 현재 한국의 정서에 있다. 한국 대중들에게 파스텔 톤 위주의 밝은 색감과 과한 빛 노출의 기법은 분명 ‘힙하다’는 의견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를 모두의 취향으로 확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실적인 컨셉에서 환상적인 색감을 뽑아내는 것보다, 환상적인 컨셉을 좀 더 쉬운 이해도로 접근하는 것이 대중들을 설득시키는 데에 있어서 효과적이다. (블랙핑크와 아이브는 후자의 비주얼과 스토리텔링을 잘 활용한 그룹이다.) 비주얼이 10대 여성들의 취향이 강하게 묻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 키치함과 팬시함을 기조로 하며 원색 위주의 강한 색상을 자주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타겟층을 제외한 향유층들이 이런 디자인들을 마주치면, ‘예쁘다, 10대 여성들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사고 싶다’는 생각이나, ‘내가 사용하면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20대 남성이 바비인형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는 듯한 이질감은 ‘미’의 기준을 떠나 ‘어울림’의 기준에서 어긋난다. 결국 '현재' 보이는 양상으론 전체적인 한국인의 무드를 관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6. 그럼에도 음원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매니아틱한 비주얼과 별개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강한 후크송의 형태를 띠었기 때문이다. SM의 많은 노래들이 ‘선 반감 후 중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초기엔 이질감을 일으키지만, 들을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비교적 쉬운 가사들과 멜로디 라인,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포인팅 파트까지 반복해서 들을 경우 계속해서 좋은 형상으로 맴돌도록 노래를 구성했다. 현재 주류를 차지하는 걸스 힙합과 모던 팝의 장르가 아닌 Y2K 분위기 중심의 미니멀한 멜로디들, 주체성을 추구하는 가사 트렌드와 정반대의 흐름으로 가는 ‘대상’을 선망하는 전통적인 가사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을 선사한다. 250과 FRNK라는 감각 있는 작곡가들이 참여했다는 영향도 있지만, f(x) 이후로 ‘레트로 퓨처리즘’을 갈고 닦아온 민희진의 프로듀싱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7. 비주얼적인 부분에선 매니아의 시선을 끌었다는 점, 음악적인 부분에선 SM곡의 장점들을 잘 데려와 대중성을 잘 저격하고 있다는 점이 섞여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인기가 완성됐다 볼 수 있다. 어떤 그룹이든 늘 그렇듯, 이후 설득의 과정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소녀시대, f(x)처럼 감각적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비주얼을 어떻게 주류문화로 끌어들일지, 그러면서도 음악적인 부분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민희진이라는 이름의 효과’가 떨어져갈 때쯤 그룹 자체로써 증명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