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내기 당구
남편이 당구 치는 모습을 본 지 오래다. 연애시절 남편은 나와 데이트를 하다가도 친구들이 기다리는 당구장에 가곤 했다. 친구들 때문에 데이트를 일찍 마친 적도 있었고,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남자들만의 경기장 같던 당구장에 가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당구대마다 게임 중인 각양각색의 남정네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아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당구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남편이 아들에게 당구를 가르쳐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둘 다 시큰둥했다. 아쉬워하는 건 나뿐이었다. 왜 그때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친구들 중에 당구를 잘 치는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속에 자신도 당구를 배우고 싶다는 눈빛이 더해졌다. 아들의 마음을 읽고 내가 먼저 말했다.
"너도 이참에 아빠랑 같이 당구장 한번 가봐."
"그럴까?"
아들과 나는 동시에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심드렁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가자. 가는 거야 뭐 어려워."
아들을 데리고 당구장을 다녀온 남편은 큐대 잡는 것도 어설프고 아직은 서툴다며 웃었다. 아들은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왜 안되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뒤로 한동안 남편과 아들이 당구장에 가는 일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들은 다시 당구에 호기심을 보였다. 당구를 잘 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남편은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기꺼이 아들과 당구장에 갔다. 그렇게 몇 차례 당구장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아들이 나에게도 같이 당구장에 가자고 했다. 아빠와 게임하는 모습을 구경하라는 것이었다. 몇십 년 만에 두 남자를 따라 당구장에 갔다. 그날 나는 아들과 남편이 당구 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남편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력의 아들은 호기롭게 저녁밥값 내기를 하자고 했다. 한술 더 떠 남편은 게임비까지 걸자고 했다. 아들은 50을 놓고, 남편은 250을 놓고 게임이 시작됐다. 몇 번 당구장에 가본 게 전부인 아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이길까 봐 시작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남편은 30만 놓고 치라고 했지만, 아들은 굳이 50을 고집하며 허세를 부렸다.
결과는 뻔했다. 아들의 큐대는 흔들렸고 허공을 휘저었다. 나는 그날 저녁 식사가 특별히 더 맛있지도, 그렇다고 덜 맛있지도 않았다. 남편은 맛있게도 냠냠. 아들은 다음 내기 당구를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팔팔하게 친구들과 내기 당구를 치던 남자는 어느새 새파란 아들과 마주 앉아 주름진 얼굴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들의 모습 속에 문득 젊은 날의 남편이 비친다.
그나저나 아들아, 혹시 진로를 바꾸려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