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대통을 바라며
어김없이 새해는 밝아온다. 어떤 해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맥없이 흘려보냈고, 또 어떤 해는 바쁘게 지냈지만 무엇을 이루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인연이 닿아 설렘으로 가득했던 해도 있었다. 매해 크고 작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고, 한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은 늘 새롭고 기대에 차 있다. 누구나 복을 많이 받고 운수 대통하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무료사주를 본 적이 있다. 생년월일과 생시를 입력하자 그럴듯한 문장들이 나에 대한 풀이처럼 쏟아졌다. '오호라, 제법 맞는 거 같은데?'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학문에 기대어 풀어낸 말이라니, 재미 삼아 참고하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 말들에 기대기 시작한다면 어느새 내 선택과 책임을 내려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재미로라도 점을 보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괜히 철없는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얼마 전, 이웃집 할머니와 길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두 분은 오래된 시골집에 살며 동네 농사일을 도와주며 살았다. 혼자된 지 오래된 할머니는 인적 드문 시골길을 소리 없이 걷고 있었다. 적막이 할머니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듯 보였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머슴을 두고 살던 만석꾼 집안의 막내딸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억센 농사일만 하며 살았다기엔 설명되지 않는 고운 분위기가 풍겼다.
어느 날 한 스님이 할머니의 아버지에게 막내딸이 가난한 집으로 시집가지 않으면 단명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딸을 둔 아버지로서 그 말이 얼마나 두려운 예언이었을지, 나 또한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할머니는 가난한 남자를 만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다. 젊은 시절 내내 고생을 거듭했고, 그렇게 할머니는 아흔이 되었다.
나와의 대화 끝에 할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밥 굶어가매 오래 살면 뭐햐."
한스러운 말을 뱉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더없이 쓸쓸해 보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었다.
어쩌면 스님의 말은 맞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할머니는 단명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부잣집에 시집갔다면 정말 단명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예언은 증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늘 맞는 것처럼 보인다.
새해가 오면 우리는 또다시 복을 빌고, 운을 기대한다. 건강하기를, 일이 잘 되기를, 힘들지 않기를, 기쁜 일이 가득하기를. 그러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삶을 결정짓기에는 인생은 너무 길기도, 또 너무 짧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운세로 풀어내는 말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사진출처 : pixabay-beasternchen-ai-generated-8909071_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