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다시 한번 의도된 클릭이 필요하다

by 아나스타샤

조급하게 다가갔던 인연에게서 상처 입은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생각의 꼬리물기는 요즘 인터넷 세상의 알고리즘 형성과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주변인들로부터 오는 무례한 자극은 내 마음속 데이터로 쌓이고, 나는 더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도록 업데이트된다.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은 내 안에서 재생되고, 예전에는 흘려보냈을 감정들마저 점점 선명해진다. 마치 반복 학습처럼.


그 때문인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싫어하는 지점들도 조금씩 늘어난다. 누군가의 말투,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내 마음도 나를 향해 계속해서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신호에 대한 알아차림은 여전히 서툴다. 아니 주의 신호 자체를 무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계속 겪다 보면 내 취향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취향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각과 청각으로 전해지는 타인의 심상들은 내 감정을 무디게 하기보다 더 발달하게 했다. 의도치 않은 클릭 한 번으로 그것이 나의 취향이라는 듯, 패턴처럼 비슷한 인간상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붙는다. 그런 현실이 불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적정한 자기장을 띠는 사람을 좋아한다. 같은 극처럼 지나치게 찰싹 달라붙는 사람에게는 부담을, 다른 극이라 강하게 밀어내는 사람에게는 불쾌감을 느낀다. 관계형성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달라붙지도 밀쳐내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가 편안하다. 포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관계. 그러다 보니 친구나 지인이 많지 않다.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오래 유지하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었다.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낸 언니를 만났다. 나는 만남의 간격이 촘촘하지 않은 편인데, 그 언니 역시 그랬다. 오랜만에 만나도 같은 농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대화 중에 언니는 나이 들고 보니 친구가 없다는 말을 했다. 사람을 많이 거느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섞인 말처럼 들렸다. 나 역시 비슷했다. 살다 보니 그 소수의 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조차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면 다니는 대로 바쁘고, 집에 있으면 있는 대로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나는 종종 ‘관계의 알고리즘’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는가. 그것이 곧 내 삶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선택의 누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고, 기억의 꼬리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조금 더 여유를 가지는 법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조금 느린 학습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판단하거나, 조급하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최소한의 알고리즘일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갈등은 더 깊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잘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고, 주변인들은 전부 눈먼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잘되는 사람은 없다. 그의 바랑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눈먼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속상한 마음 때문에 내 바랑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람과의 관계에도 알고리즘이 있는 걸까. 새로운 알고리즘 형성을 위해 다시 한번 의도된 클릭이 필요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