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해진다는 것

선명함 이후의 시선

by 아나스타샤

할머니 살아계실 적, 할머니가 설거지해 놓은 그릇에는 밥풀 자국이 남아 있곤 했었다. 요즘은 엄마가 설거지해 놓은 그릇에도 종종 밥풀 자국이 남아 있다. 아직은 젊은 나의 눈에 띄어 다시 설거지를 한다. '이게 안 보이나?'싶은 생각도 들지만 아무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 시력이 점점 나빠지더니 이내 눈이 점점 침침해졌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시력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지만, 난시가 있어 사물이 퍼져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운전할 때나 TV를 볼 때만 착용하도록 안경을 맞췄다. 가까이 있는 글씨나 핸드폰 화면을 볼 때는 안경 없이 보는 것이 더 선명해 상시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 속 글씨들이 퍼져 보이기 시작했다. 멀찍이 밀어내야 겨우 또렷해졌다. 노안이 진행되면 가까운 것도 흐려진다며 다초점렌즈로 다시 안경을 맞췄다. 먼 것도 가까운 것도,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선명하지 않다. 시력이 좋았을 땐 당연한 줄 알았다. 안 보이는 답답함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이제는 매일의 흐릿한 시야도 별스럽지 않다.


딸아이 역시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력이 나빠 안경과 렌즈 착용이 익숙하다. 대학생이 된 딸이 종강 시즌에 맞춰 시력 교정 수술을 하기로 했다. 요즘은 기술과 장비의 발달로 수술 방법 또한 다양해졌지만, 딸은 고도근시라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각막보호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다.


세이브라섹 이후 딸은 모든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빛을 등진 채 생활했다. 나는 아침마다 밤새 딱 붙어버린 딸의 눈꺼풀을 촉촉이 적셔 눈이 자연스레 떠지도록 도와주었다. 그때마다 딸은 잔뜩 예민해진 채 아픔을 참아냈다. 우리 눈에 작은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세상 불편한 것을, 각막을 깎아냈으니 얼마나 아플까 싶었다. 우리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때마다 나는 모든 아픔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의 효과를 실감하곤 한다.


딸이 라섹을 하고 며칠 뒤,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하는 날이었다. 보호자 대기실에는 수술 장면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었다. 덕분에 심적인 초조함은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넣는 장면을 보며, 마치 그 통증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술실에서 걸어 나온 엄마는 아픈 것도 없고 세상이 너무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뜻밖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이렇게까지 잡티가 많았느냐며 놀라움과 속상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내 눈에 엄마의 얼굴은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수술 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찾아온 셈이었다.


나이가 들면 귀가 어두워져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침침해져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몸도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사실이 새삼 경이다. 엄마는 갑자기 또렷해진 시야로 자신과 타인의 얼굴을 직시하게 되면서 뜻밖의 속상함을 느꼈다. 잘 보인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게 될 테니, 가까운 것을 볼 때는 돋보기를 사용하라고 했다. 그 말이 꼭 눈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티끌에 연연하기보다, 조금은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흐릿해진다는 것은 보지 못하게 되는 답답함이 아니라, 무엇을 보지 않아도 되는지를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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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