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뒤에야 미워할 수 있었다
나의 초년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내는 것이 당연했고, 아무렇지 않다고 여겼다. 내 감정을 들어주거나 읽어줄 만한 환경도 아니었으니까. 나의 감정과 욕구들이 묻힌 채 살아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고, 까탈스럽지 않던 나였다.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나의 예민한 감정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인 내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섬세한 감정들에 가시가 돋아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편이 생기고 편안해져야 할 때, 오히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의 욕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쓸수록 몸과 마음의 피로는 쌓여갔고, 나는 점점 날이 선 사람이 되어갔다. 그때마다 내가 어릴 적 말이 없고 무심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을수록 내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엄마를 향한 원망과 미움이 차올랐다. 도와주지 않았다는 생각, 혼자 버텨야 했던 시간들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나를 자주 괴롭혔다.
남편은 그런 나를 조용히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 인정받지 못했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감각은 여전히 나를 측은하게 돌아보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과 엄마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 애쓰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최선의 순간들 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불쑥 고개를 들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중심을 잡아주었고, 내 안에 자리 잡은 차갑고 따가운 낯선 감정들을 언제나 묵묵히 덮어주었다. 그랬던 그의 어깨가 요즘 들어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날들이 있다. 우린 서로가 주고받은 얘기를 기억하지 못해 머쓱한 웃음을 짓는 일도 잦다.
나이 든 엄마는 남편이 출장을 가있는 동안에 적적함을 달랠 겸 우리 집에 와 함께 지내기도 한다. 주방에서 밥을 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면 나는 자주 부끄러워진다. 이금순할머니의 셋째 딸로 태어난 엄마, 사랑만 받고 살아도 부족했을 세월이었을 텐데 엄마의 시간은 유난히 모질었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눈 한번 깜빡이는 것보다 빠르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엄마와 나, 서로 다른 시간 위에 서 있었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같은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못난 생각을 거두고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다 안다고, 전부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외로이 서 있기도 하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다 알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새까맣게 잊은 채 태어날 때부터 부모였던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조금 더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엄마가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