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아미산 정상에서
새해 첫날 해돋이에 대한 큰 기대나 설렘을 갖고 있지 않았었다. 한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자정, TV에서 보이는 보신각 종소리에 맞춰 '해피뉴이얼'하고 외치면 새해는 자연스레 우리 집 안방까지 배달됐다. 매일 뜨는 해를 보기 위해 굳이 움직일 이유는 내게 없었다.
그랬던 내가 2025년 연말이 되자 해돋이에 대한 마음이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마음이 들떠 올해는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이 무릎이 좋지 않아 장거리 운전은 무리가 될 수도 있어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미산이 떠올랐다. 높이가 350m 정도 되는 나지막한 산이라 가볼 만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미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과거에도 나는 해돋이 경험이 한번 있었다. 소녀감성이 풍부한 친구 L은 해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L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님을 보고 한해 소망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그 친구의 그런 행동에 호기심이 생겼던 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L과 함께 포항 바다에 갔다. 해를 보는 일이 그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해변가에서 해를 보기 좋은 위치를 찾아 해가 얼굴을 내밀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바닷가 칼바람을 맞아가며 기다리는 시간은 상상이상으로 피곤하고 추웠다. 마침내 태양이 수평선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떠오르는 해님을 핸드폰에 담고 또 담았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그날의 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지 추웠다는 것 밖에는..
2025년 12월 31일, 어김없이 TV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2, 1, Happy new year! 그렇게 또 새해는 모두의 집안으로 들어왔다. 가까운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느라 카톡은 폭주했다. 우리 가족은 지체 없이 잠들어야 했다. 몇 시간 뒤인 새벽 5시에 기상하려면 많이 자야 4시간 정도였다.
새해 첫날 새벽 5시의 느낌은 눈에 모래를 뿌려 놓은 것처럼 깔깔했고, 추운 날씨를 직감했던 몸은 이불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도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일어났다. 계획해서 움직이고는 있지만, 달콤한 잠에서 깬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날씨 어플을 통해 그날의 체감 온도가 영하 18도라 하여 꽁꽁 껴입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20~30분 거리에 있는 아미산 주차장은 봉사하는 분들과 차량들로 이미 붐비고 있었다. 이제 산행이 시작된다. 고도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무릎이 좋지 않던 남편이 걱정됐다. 나는 입구에서부터 아들한테 단단히 말했다.
"아들아, 아빠 옆에서 잘 잡아줘야 해."
야트막한 산이라 그런지 남편은 내 생각과 달리 잘 올라가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추운 날씨 탓에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콧물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요즘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고 놀려 대니 이제부터 매서운 추위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이날의 추위는 정말 매웠다. 아들과 남편은 앞서가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딸은 내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추느라 지체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같은 말만 해대며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세상에, 이렇게 숨이 차다니. 나 운동부족이네."
"아니, 출발하기 전부터 내 걱정을 그렇게 하고 아들한테 부축하라 어쩌라 하더니 당신이 더 문제네."
정상으로 가는 갈래길에서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거리가 짧은 대신 경사도가 높았고 계단이 많아 어지럽기까지 했다. 운동을 하지 않고 방치해 둔 몸의 상태가 새해 첫날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해돋이 보러 산에 가자고 들떠 있던 내가 제일 상태가 좋지 않으니, 남편이 걱정반 놀림반으로 하는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세월 때문인 건지 방심의 결과인지 나의 몸은 정말이지 한심했다.
계단을 차곡차곡 내디뎠다. 쉬다 걷다를 반복해도 정상까지 한 시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 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올라와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어 까치발을 들고 산 아래 전경을 둘러보려 애썼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얼마지 않아(7시 47분경)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큰 남편과 아들에게 손을 높이 올려 멋진 해돋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가족의 건강을 기도했다.
해돋이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고? 아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각자 바쁜 시간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일상에서 늘 함께지만 어쩌면 한 번이 될지도 모를 그날의 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또래 친구들이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 손잡고 올라가 준 아들과 딸에게 고마운 해돋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