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안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by 아나스타샤

12월이 되면 반짝이는 장신구와 불빛들로 거리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도심 곳곳은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연말 일정 중 한해의 마지막 공휴일인 크리스마스. 그날은 종교인이 아니어도 지인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눈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어른들,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으려 밤새 눈 꼭 감고 기다리는 아이들, 모두에게 특별히 설레는 날인지도 모른다.


이십 대 초반 서울살이를 하던 나는 성탄절이 되면 거리에서 젊음을 과시하며 즐겼던 때도 있었다. 갓 성인이 된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한껏 차려입고 친구들을 만나는 날,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흥이 무한리필되는 날, 나이트클럽과 락카페에서 요란한 음악을 들으며 잠들지 않는 날, 술을 잘하지 못해도 친구들과 술잔을 들며 성탄절 분위기에서 오는 즐거움에 취했었다. 그 시절에는 음식값이 두 배여도, 술값이 3배여도, 택시비가 따따불이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90년대 초중반에 나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하얀 밤 안에서 추억의 페이지를 만들었다.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나의 젊음도 계속될 줄 알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성탄절은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남편이나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역할이 생겼다. 아이가 말을 잘 듣던 안 듣던 무조건 그날 선물을 주고 가는 존재. 바로 산타할아버지다.


하루는 온 가족이 함께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갔다. 스포츠 용품 코너에서 아들이 멈춰 섰다. 마음에 드는 축구공을 끌어안고 사달라고 한다. 바로 사줄 수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기에 제안을 해보았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해 달라고 기도해 보는 건 어때? 착한 아이들에겐 선물 주시잖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아들은 축구공을 내려놓았다. 곧 산타할아버지가 될 남편과 나는 그렇게 아들에게 줄 선물의 정보를 알아냈고, 아들이 간절히 원하는 선물을 착오 없이 전달하기만 하면 됐다. 일단 마트에 가서 아들이 품에 안았던 축구공을 구매해 왔다. 예쁘게 포장해 아들 눈에 띄지 않게 꽁꽁 숨겨 놓았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아들은 잠들기 전까지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기도를 들었을까? 축구공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까? 안 주시면 어쩌지? 등의 질문들을 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받으려면 일찍 자야 한다고 얼르고 달래 잠들게 한다.


별도 달도 잠드는 까만 밤이 되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하고 은밀하게 선물을 두고 가는 산타할아버지가 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눈을 뜬 아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이 마트에서 보았던 축구공, 정확히 그 축구공을 산타할아버지가 주셨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아, 엄마랑 아빠가 그때 그 마트에 가서 사 왔으니 정확히 그 축구공일수밖에. 그날 아들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아쉽게도 그토록 순수했던 아들의 표정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왔다. 산타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꽤나 뿌듯하고 쫄깃했던 역할극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가정 안에서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고 행복했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요즘 나의 성탄은 화려하거나 쫄깃하지 않고 조용하다. 시골살이를 하고 있어 더욱더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불빛은 없어도 별빛을 볼 수 있고, 캐럴은 들을 수 없어도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장감을 느낄 수는 없어도 여러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엿볼 수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남편은 해외에 나가있고, 딸은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온단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올해 남편과 딸이 없는 크리스마스가 유난히 허전한가 보다. 뻔히 알면서도 아빠랑 누나가 언제 오는지 자꾸 묻는다. 나는 딸이 합류하기 전까지 아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핸들을 잡았다. 볼거리가 많은 서울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막히는 도로와 인파가 두려워 예산 가서 어죽을 먹고, 공세리 성당 들렀다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아들과 합의했다. 아들과 둘만의 데이트도 완벽했다. 이제 딸이 돌아오는 저녁에 천안 세계크리스마스축제에 가서 분위기를 만끽하기로.


다소 늦은 저녁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천안으로 향했다. 어느덧 성인이 된 딸과 잘 자란 아들과 나란히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찬란한 불빛 속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들과 딸의 뒷모습은 빛났다. 엄마인 내 눈에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잠깐동안 거리의 불빛을 눈에 담았고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을 했다. 카페에서의 시간도 길지 않았다. 아쉽지만 마감시간이 다되어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새겨준 아이들과의 고마운 시간이었다.


지금껏 크리스마스날이면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끈다. 매년 크리스마스 날이면 하는 작은 행위가 더없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진출처 : pexels-cottonbro-3149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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