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는 사람과 설명하는 사람 사이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중증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사례관리를 하던 때였다. 내가 관리하던 대상자 중 한 명이 환청으로 인한 돌발행동을 보이며 응급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는 평소 전화 모니터링에도 성실히 응했고, 방문 상담에서도 과거 학교폭력 경험으로 인한 불안증세를 보일 뿐 환청 증상은 없었다. 센터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참여하던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도 잘 복용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소식을 접한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일까? 도대체 왜지?' 나는 동료 사회복지사에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털어놓았다.
"괜찮았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그는 내 말에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사회복지사로서 '왜 그랬을까요?'라는 말은 하면 안 돼요. 그 대상자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경위를, '이래서 이랬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앞으로는 그런 자세로 일하셔야 해요."
사건의 충격 위에 그의 말이 겹쳐졌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 말은 옳았다. 그래서 오래 남았다. 나는 대상자를 이해하려는 사람이었고, 그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어딘가 낯설었다. 그날의 사건과 동료의 말에, 나는 오랫동안 심해로 가라앉았다. 동료의 말처럼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부족한 사람이었다. 대상자들에게 쉽게 감정이입했고, 그만큼 자주 흔들렸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에도 서툴렀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의 능력은 크지 않았고, 그들에게 내가 하는 역할은 미미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대단한 기대를 품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매 순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후가 되면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해졌다. 업무에서 오는 답답함이 차오를 때면, 센터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곤 했다.
함께 일하던 직원과 눈치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은 길가에 주차된 차들로 더 비좁았고, 그 사이를 걸으며 나누던 짧은 수다가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때의 수다와 편의점은 나에게 작은 치료제였다. 신기하게도 그곳을 다녀오면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가끔 그 시절 편의점이 생각난다. 편의점으로 향하던 길목, 얼굴을 가볍게 스쳐가던 바람의 감촉까지 함께 떠오른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매장 안을 몇 바퀴나 맴돌다가, 겨우 실육포 하나를 집어 들던 날들. 뭐라도 씹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던, 그런 날들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과, 이해해야만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이를 지나고 있다.
사친출처 : pexels-leonardo-lamas-32247393-700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