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꽃
겨루다 「동사」 서로 버티어 승부를 다투다.
요즘 나타나는 사회적 혼란을 보며 난 인간의 양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양심을 삭제한 삶을 선택한 것처럼 비치는 사람들. 뉴스를 보며 하루가 무겁게 시작되고 해소되지 않는 체증이 답답함을 더해갔다.
그날 저녁, 남편과 단둘이 외식을 하던 참이었다. 식당은 손님이 없어 비교적 한적했고 워낙 말이 없는 그와의 식사는 음식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메뉴는 코다리찜. 코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맛깔나게 잘 졸여진 무와 감자까지 양념을 콕콕 찍어 입에 넣었다. 먹다 보니 뒤늦게 매운맛이 올라왔다. 잠시 환기시키려 물을 마시는데 그때서야 다른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화 내용 때문인지 허기가 달래져서인지 내 밥숟가락은 느리게 움직였다.
우렁차고 힘 있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정치 이야기로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말을 하는 남자의 위치는 내 뒤쪽 테이블. 유독 한 남자 목소리만 강하게 들려 일행이 몇 명인지 알 수는 없었다.
TV에서도 뉴스로 다루는 내용들이라 관심 있게 듣고 있었고 마음이 편치 않은 얘기들이었다. 다소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눈짓으로 ‘정치 얘기하나 보다.’라고 사인을 주고받고 다시 코다리 가시를 발라냈다.
갑자기 뒤쪽 테이블 남성이 언성을 높였다.
“뭘 전부 삭감했다는 겁니까? 형님, 잘 공부하고 오세요! 이 형님이 나이 먹고 이상하게 변했네. 이러니 나라가 안 바뀌지!”
그 순간 나는 듣고야 말았다. 식당 아주머니의 조심스러운 한숨 소리를.
과거에도 정치 얘기는 끊임없는 다툼의 소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얼마나 더 자주 보고 듣게 되는 광경일까. 아주머니의 짧고 얕은 한숨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원래는 음식점에서 다른 테이블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행위를 하면 안 되지만 난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잽싸게 뒤를 돌아 일행이 몇 명인지 연령대는 어찌 되는지 파악하고 안 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일행은 남자 세 명으로 8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백발의 남성 두 명과 일관되게 혼자 목소리를 냈던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발의 남성 두 명은 후배의 면박에도 반박하지 않고 이내 그만하고 나가자며 일어섰다. 더 이상의 감정싸움이나 언쟁 없이 자리는 마무리되었고 일행 모두 식당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방금 나갔던 일행 중 백발의 남자 한분이 식당으로 다시 들어와 우리 테이블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많이 시끄러웠죠? 아까 큰소리 나게 해서 미안합니다.”
남편과 난 괜찮다고 말하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에게 사과를 했던 노인은 식당 아주머니 입에서 한숨이 나오도록 언성을 높인 당사자도 아니었다. 다시 돌아와 정중하게 사과하는 모습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어른의 자세였다. 난 그렇게 보았다.
아들이 어릴 적 일이었다.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첫 국기원 심사 신청을 할 때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국기원 안 갈래. 겨루기를 시키는데 겨루기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다른 아이를 때려야 하는데 난 그게 싫어.”
아들은 신생아 때부터 순했고 유난스럽게 굴었던 적이 없었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아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오목조목 작은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마냥 사랑스러웠다. ‘겨루기가 싫다고? 음... 그럴 수 있지. 친구를 때려야 하니 싫을 수 있지.’ 이해하지만,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겨루기를 하지 않는 아들에게 관장님은 정말 국기원 심사 안 가겠냐는 질문을 했고 아들은 "네" 라고 대답했단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그때 그 순간을 회상하며 태권도장에 모든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 안 가겠다는 대답을 하는 게 쉽진 않았다고 한다.
어린 아들은 태권도에서 기본 기술과 품세로 익힌 기술을 활용하여 두 사람이 서로 기량을 겨루어 보는 일에서 조차 양심(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려는 의식)이라는 꽃이 피어난 것이었을까. 겨루기가 싫다던 아들의 말과 어린 아들이 국기원에 가기 싫다던 이유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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