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말을 뒤로하고 병원에서 챙겨준 검사기록지와 소견서를 받아 들고 가까운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침묵 속에 그날 남편이 운전하는 차량의 승차감은 달랐다. 차 안은 내가 유모차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른하게 느껴졌다. 내가 남편을 봐 온 세월 동안 가장 조심스러운 운전이었다.
더위가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5월, 차 안의 공기마저 따뜻했을 그날 나는 롱패딩으로 둘둘 싸매고도 오한증상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응급실로 가는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차 안은 적막이 가득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의 말을 들어 내 얼굴빛이 더 안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이 노랗게 황달이 올라온 것 같다고 했다. 두꺼운 패딩으로 완전 무장한 나를 본 간호사는 지금 당장 겉옷을 모두 벗으라는 말도 잊지 않고 했다. 오한으로 열이 오르고 있는데 춥다고 두꺼운 옷으로 꽁꽁 싸고 있으면 열이 안 떨어진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곧바로 혈액검사와 CT촬영을 하고 대기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건지,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5월 첫째 주 황금연휴 때도 나는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가정의 달인 5월 들어 나는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피곤했다. 감기인가 싶어 약국에서 종합감기약과 소염진통제를 사서 먹기도 했다. 그렇게 5월 중순까지 버텼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니.
새벽 1시경 결국 응급입원을 했다. 환복 후 얼마되지 않아 담당의사가 응급병실로 찾아왔다. 혈소판수치가 시간단위로 감소하고 있고, 백혈구 수치도 절반으로 감소했고, 간수치는 계속 상승 중이라고 했다. 염증수치 또한 높아지고 있단다. 당분간은 매일 혈액검사를 진행하여 추이를 지켜볼 것이고 감염내과와 호흡기내과 협진 필요하면 진행하겠다는 말도 했다. 혈액검사 상황에 따라 혈소판수치 계속 감소하면 수혈을 할 수도 있고, 백혈구 수치도 계속 지켜본 후 무균실로 옮겨질 수도 있다고. 담당의사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말투로 나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달하고 갔다.
혈소판, 백혈구, 간수치, 염증, 면역기능 각종 단어들이 왜 나한테 쏟아지는지 의아했다. 특별히 짐작 가는 원인이 있지도 않았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반복적인 생활에서 무엇이 내 몸안을 공격했는지 의문이었다.
현재 내 머릿속에 의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삿바늘은 내 팔뚝 어딘가에 있을 혈관을 찾기 바빴고 찌르고 빼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을 찾자면 몸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그까짓 주삿바늘이 꽂히고 빠지는 정도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입원수속이 끝난 새벽, 남편은 상주간호를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사태 이후에 병원의 보호자 간병신청과 면회 시스템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남편은 집에 있는 아이들과 고양이들도 돌봐야 해서 병원에만 붙어 있을 수 없었다. 다음날 올 테니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라는 말을 하고 남편은 집으로 귀가했다. 내가 갑자기 입원하는 통에 새벽까지 고단했을 남편이다.
남편이 가고 나서 응급병실에는 80대 할머니와 할머니 보호자인 아들 그리고 나만 남았다.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은 할머니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자연스레 나는 간호사와 할머니 보호자인 아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오게 됐고 깡마른 할머니 몸무게는 38킬로란다. 기력이 없어서인지 할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고 듣기만 했다.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잠시 간호사들의 발길이 끊긴 시각, 할머니 보호자인 아들도 새벽까지 지쳤는지 쪽잠에 코골이가 한창이었다. 병실에 울려 퍼지는 할머니 아들의 코골이 소리는 까만 밤이 되면 우리 집 마당에서 듣던 개구리 떼창 소리와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