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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환자

집에 가자

by 아나스타샤

날이 밝자 나는 4인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병상마다 커튼은 모두 닫혀 있고 조용했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 다인 병실 분위기는 환자와 보호자들, 면회객들로 북적대곤 했다. TV소리, 환자, 보호자, 면회객, 간호사들의 말소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면회객들이 사 온 음료나 음식을 서로 나누었고 무엇이든 나누는 만큼 친분은 쌓였다. 자연스레 각자의 스토리를 조금씩 공유하며 가족처럼 스며들어갔다. 입원기간이 길어질수록 병실에서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기억과 다른 병실 풍경이 낯설면서도 달가웠다. 각자 병상의 커튼을 닫아둔 채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입원과 동시에 의료진들의 관리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타인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아직 없었다. 침묵 속에 몸에서 보내는 갖가지 신호에 집중했다. 어쩌면 나는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탓에 병객을 자처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서히 주변이 궁금했다. 옆자리 환자의 웃음소리가 가끔씩 새어 나오곤 했다.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하며 웃는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최대한 참으며 ‘낄낄낄’ 웃고 있었다. 수시로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싫지 않았다. 그 환자의 존재를 느끼고 나서부터 나는 그녀를 '행복한 환자'라고 불렀다.


그날도 병원 밥을 억지로 몇 수저 뜨고 식판 반납을 위해 커튼을 열었다. 긴 머리에 야구모자를 뒤로 쓴 사람,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입원환자가 분명했다. 자신이 식판 반납을 해주겠다며 재빠르게 내 식판을 낚아챘다. 커튼 앞에 서서 자신은 수액을 맞지 않아 팔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그녀는 ‘행복한 환자’였다.


조용한 오후, 그녀의 침대 커튼을 조심히 열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행복한 환자'에게 귤 두 개를 살포시 전하고 느린 걸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눈이 동그래진 행복한 환자는 몹시도 고마워했다. 그 후로도 매 식사 시간마다 내 식판을 치워주겠다고 커튼 앞에 서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친절을 그리고 그녀의 웃음을 보는 날이 길지 않았으면 했다. 나의 바람처럼 씩씩하게 식판을 낚아채던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남기고 먼저 퇴원했다.


나는 식사량과 상관없이 규칙적인 투약과 관리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류마티스내과 담당의는 내가 퇴원할 때까지 자가면역질환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정확한 원인치료는 아니지만 약물로 비정상적인 모든 수치들은 정상 회복되었고 몸에 증상들은 가라앉았다. 똑똑할 것 같은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가장 알기 어려운 영역인가 보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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