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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다음 방문 때는 우아하게 먹을게요!

그날 우리 가족은 식사가 아닌 전투를 했다.

by 아나스타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식을 천천히 오래도록 많이 먹는 편이었다. 마른 체형에도 불구하고 분명 대식가였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평소 매운맛을 좋아하던 터라 집에서 짬뽕을 시켜 먹었다. 얼큰한 짬뽕 국물에 홀려 야무지게 먹고 얼추 바닥이 보일 때쯤 이물질을 발견했다. 하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발견할게 뭐람? 중국집으로 전화해 짬뽕에서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렸다. 사장님은 긴말 없이 바로 음식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거의 다 먹었으니 괜찮다고 말했지만 새로 배달해 주겠다는 사장님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마다하지 않았다. 다시 배달된 짬뽕을 처음 먹는 것처럼 먹어 치우고 남은 짬뽕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서야 흡족했다. 언제나 나는 음식 먹는 걸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했다.


아쉽게도 요즈음에 난 예전처럼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행복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음식이 종류별로 한 상 차려진 모습을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우리 집 애들이 자주 반복 하는 말이 있다. 아침 먹을 때 "우리 점심 뭐 먹어?", 점심 먹을 때 "우리 저녁 뭐 먹어?", 먹고 싶은 메뉴가 있거나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주로 하는 질문이다. 편식이 심한 아이들 식성과 입맛을 맞추려면 외식이 가장 편한 방법이다.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요즘 들어 자주 가던 식당이 있다. 그날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아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했다. 그 한마디에 나의 손은 바빠졌고 모든 종류의 메뉴를 주문할 기세로 키오스크를 눌러댔다. 잠시 뒤 식전 빵을 시작으로 스파게티부터 차례대로 테이블에 놓이기 시작했다. 우리 식구는 빠른 손놀림으로 빵을 먹고 스파게티, 리소토, 피자, 스테이크가 나오는 데로 먹기 편하게 접시들을 배치했다. 맛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얼마 먹지 않아 우리는 이쯤 되면 배불러야 한다는 식의 배부르다는 말을 영혼 없이 해대며 입속으로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음식을 먹는 내내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모든 접시가 비어갈 때쯤 손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배부르다 말하는 소리에 진심이 느껴졌다. 음식을 말끔하게 먹고 마무리하는 것은 아들의 몫이다. 배부른 우리는 남은 음료를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올 사람은 다녀온다.


"이제 갈까?"라는 말로 눈빛을 교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값을 내기 위해 계산대에 서자 사장님은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가게 들어온 지 40분밖에 안되었어요. 음식도 종류별로 많이 시켜놓고 왜 이렇게 빨리 드세요? 하하하하하하. 다음에는 천천히 이야기도 나누면서 드세요.."

"그래요? 우리가 그렇게 빨리 먹었어요? 호호호호."


사장님과 우리는 모두 머쓱해하며 웃었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우리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음식을 다 먹고 일정시간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느꼈고 각자 화장실도 한 번씩 다녀왔으니까. 그런 행동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40분밖에 안 지났다니. 그럼 실제로 우리가 음식을 입에 넣고 먹었던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사장님의 이야기에 나도 적잖이 놀랐다. 그날 우리 가족은 식사가 아닌 전투를 했다.


음식을 빨리 먹는 것을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싫어하는 나였다. 어릴 때부터 밥을 늦게 먹어 할머니와 엄마는 내가 아침 먹은 숟가락 내려놓으면 점심때가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느릿느릿 먹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엄마는 아직도 나를 신기해한다.


그날 우리들의 식사는 음식만을 향한 탐욕에 가까운 집중이 있었다. 만약 음식을 먹는 것이 전투라고 느껴졌다면 나는 먹는 것을 즐거워하거나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건 음식 그 자체가 주는 행복도 있지만 함께 먹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 공간과 시간이 주는 여유와 같은 정서의 버무림 때문이다.


사장님, 다음 방문 때는 우아하게 먹을게요!





사진출처 : pexels-ella-ol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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