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색은 존재했다.
운전하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랜 세월 추억 속에 담아두었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각자 생활에 집중하느라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었다. 푸근한 어른이 되어 마주 서있는 우리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지만 태연한 척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에게서 풋풋했던 갓 스무 살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내 눈은 바빴다.
줄곧 도시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지방에서 터를 잡고 있는 나를 찾아왔기에 미리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 속에 각자의 세월을 전부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필름의 중간이 날아가 버렸지만 그래도 우린 그때의 우리를 알기에 그저 우리였다.
J와 M은 나에 대해 항상 여유롭고 차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늘 차분하고 여유로웠다고?' 친구들의 말속에 있는 나는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하게 잊혀버린 낯선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결혼하면서 서서히 바뀌어 버린 걸까. 흔히 여자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세월 동안 지휘봉을 잡고 가정의 질서와 체계가 잡히도록 깐깐한 감독관처럼 굴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유연함은 줄어들고 책임감에 배려, 의무, 희생 등의 단어적인 삶이 더해져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어쩌면 남편도 자유와 여유, 그리고 차분함까지 두루 갖추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알지도 모른다. 분명 사슴 같았는데 왜 자신이 맹수와 살고 있는지 놀라기도 벌써 여러 해다. 느리게 걷는 나였지만 아쉽게도 나보다 더 느리게 걷는 남자를 만나 내가 빠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둘 다 느리게 걸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조급한 마음에 '빨리빨리'를 외쳤다. 남편보다 더 느리게 걷거나 같이 걸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빠르게 걸었고, 그런 과정이 쌓이며 숨이 찼다. 동질감을 느끼며 속도 맞춰 걸었으면 편안했을 텐데 왜 감독관 노릇을 자처하며 숨을 헐떡이고 살았을까. 요즘은 느린 그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속도를 맞추려 애쓴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 그리웠다. 나는 세월 켜켜이 나를 아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성격 급한 나로 살며 느린 사람 채근하기도 했을 테고, 낯가림이 심해 입 한번 떼지 못하고 쭈글이처럼 지낸 적도 있을 테고, 번죽 좋게 웃으며 먼저 손 내민 적도 있을 테고, 무례함에 맞서 싸운 세월도 있을 테고, 처한 환경에 따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 범위는 있었다. 그럼에도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버티는 일은 쉽지 않다. 분명 나의 색은 존재했다. 상처를 주고받는 세월이 더해질 때마다 속도, 태도, 감정 등을 다스리는 지혜가 쌓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이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얼마 전 김정규 지음에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를 읽고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를 잘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생각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 댔을 수도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젊었을 적엔 생각 없이 살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어쩌면 그게 현재를 감각적으로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여러 환경과 관계 속에서 퇴화시켜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잘 쓸 수 있을까, 흉보면 어쩌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전에 그냥 '쓰고 싶다.'라는 감정에 집중했고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가볍게 접근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지면 자연스러운 행동에 제동이 걸리곤 했다. 본래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알고 싶게 만드는 요즘이다. 멋져 보이는 코트를 입었지만 코트자락이 발에 치이는 거추장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