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흄이 말했듯, 이성은 정념의 주인이 아니라 그 노예다. 하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정신은 감정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통제하려 애쓰는 연약한 기수일 뿐이다.
대니얼 카너먼과 폴 슬로빅 역시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통계적 사실보다 눈앞의 직관과 감각에 반응하며, 실제 위험보다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자체에 더 큰 안정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더 무서워한다. 자기가 자동차 운전하는거 보다 전문 조종사가 비행기 운행하는게 더 안전할텐데 말이다.
결국 완전한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칸트는 유한한 이성이 물자체의 벽에 막힌다고 말했다. 단지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모른다’는 무지를 자각할 수 있는 이성, 즉 자기 한계를 아는 비이성의 이성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