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멸(1988, 벨라 타르) 리뷰 (삽페)

by 김명준

(페테르 베셀 삽페 스타일로)


진흙으로 뒤덮인, 더 이상 더럽혀질데도, 추해질데도 없는 남자에게 웬 개 한마리가 굴러 들어와 남자를 향해 짖는다. 개는 고독을 모른다. 그저 눈앞의 대상을 향해 짖기만 할 뿐이다. 개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고독을, 상실을, 비참함을 인지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식의 저주다. 인간은, 짐승과는 다르게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길 바람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이 된다.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것 보다 없는 것에 더 집착하며, 우주적 공허를 받아들이지 못해 사랑 따위의 방어기제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간다. 남자는 한 가수에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인간들은 의식의 비극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가족, 자본 등 가치있어 보이는 것들에 기대거나, 오락, 도박 등으로 주의를 전환하거나, 예술창작, 철학 등으로 승화해보지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남자는 사랑에 빠지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공허한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걸, 모든 게 결국 파멸에 이를거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술집의 사람들은 춤을 추고, 멜로디는 끊임없이 무한반복 되지만 거기엔 어떠한 생명력도, 긍정성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끔찍할 정도로 공허할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가 사랑에 실패했을때, 모든 게 진흙으로 뒤덮혔을때조차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지겹도록 반복되고 무의미한 삶에서 성가신 개 한마리의 짖음 따위 전혀 무섭지 않다. 우주적 공허를 의식해버린 남자는 오늘도 말 없이, 목적지 없이 그저 걷기만 할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엠(1931) 리뷰 (미셸 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