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나타 명언 모음

by 김명준

1. 입증책임의 전도


“가장 특권적인 사람들조차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낙천주의자는 확실히 이 출산 러시아 룰렛을 정당화할 입증 책임을 지고 있다. 존재하게 된 이들은 존재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진정한 우위점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해악의 그 중대한 위험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지 알기란 어렵다.“


2. 삶=좋음이라는 전제 해체


“예를 들어 우리 중 누구도 240세까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나이까지 살지 못한다고 해서 삶이 덜 잘되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40세에 죽으면 비극적인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40세의 죽음이 비극이라면 왜 90세의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중대한 좋음이 될 무엇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왜 좋은 삶은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마도 좋은 삶은 얻기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3. 딩크랑 반출생주의는 다르다


“그중 대부분은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에서 고취된 것이다. 우리는 출산이 그로 인해 존재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하는가에 기초한, 친출생주의에 대한 비판은 거의 듣지 못한다.”


4. 시작할 가치가 있는 삶 vs 지속할 가치가 있는 삶


“삶을 시작하지 않는 결정보다 삶을 끝내는 결정은 더 강력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예를 들어 영화관에서의 저녁을 생각해 보라. 영화가 너무 나빠서 그걸 보러 가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 것이면서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 나을 정도까지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5.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을 존재하게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들의 쾌락은 그들을 위해 좋기는 하겠지만, 그 쾌락의 부재는(쾌락이 박탈당하게 될 누군가가 아예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 2


S(아픈 이)는 정기적으로 질병을 겪는 몸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다행인 일로, 그의 몸은 또한 매우 빨리 회복하기도 한다. H(건강한 이)는 빨리 회복하는 능력은 없지만,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다. S가 병에 걸리는 것은 그에게 나쁘고, 그가 빨리 회복하는 것은 그에게 좋다. H가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그에게 좋지만, 그가 빠르게 치유되는 능력이 없는 것은 나쁘지 않다.“


7. 후회의 비대칭성


“어떤 이가 자신의 삶을 즐긴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 삶을 사는 기쁨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기쁨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삶을 즐기지 않을 경우에 존재하게 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 이 경우 존재하게 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 사람이 사는 삶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좋다. 설사 그 좋음을 향유했을 누구도 없게 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8. 삶이 나쁨의 일정한 한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좋음의 양이 얼마나 되건 그것을 능가할 수 없다


“X의 삶은(상대적으로) 보통 정도의 좋음과 나쁨의 양을 갖고 있다. 아마도 긍정적인 가치 15킬로 단위와 부정적인 가치 5킬로 단위를 갖고 있다. Y의 삶은 이와는 달리 참을 수 없는 양의 나쁨을 갖고 있다(이를테면 50킬로 단위의 부정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Y의 삶은 X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좋음도 갖고 있다(긍정적 가치 70킬로 단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즉 설사 Y의 삶이 엄밀한 양적인 조건에 의하면 더 큰 순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X의 삶의 순 긍정적 가치는 10킬로 단위임에 비해 Y의 삶의 순 긍정적 가치는 20킬로 단위다.) X의 삶이 덜 나쁠 것으로 합당하게 판단할 수 있다.”


9. 낙관 편향(폴리아나 원칙)


“부정적인 경험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삶이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에 관한 개인의 판단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되어가는지다.“

“적응과 비교는 낙천주의적 기준선으로부터 작용하게 되며 낙천주의 편향의 영향 하에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보다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 자신을 비교하기가 더 쉽다.”


10. 적응의 착각


“사람들은 매일의 불편에 너무도 익숙해져 그 불편들이 만연해 있는데도 그것들을 전적으로 간과한다. 마지막으로, 이 불편들과 자기 자신의 삶의 질을 차별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


11. 이득의 허상


“존재하기의 내재적 쾌락조차도 존재한 적 없기와 비교한 순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살게 되었다면 내재적 쾌락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내재적 쾌락은 꽤 다대한 비용의 삶의 불운을 대가로 치르고서 얻어진 것이다.


12. 삶에 대한 과대평가


우리는 12세가 12세에 적합한 규준으로 A를 받는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저명한 대학 물리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의 삶이 인간의 규준에서 잘되어 간다는 이유로 그 삶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으로 잘되어 간다고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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