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 반-심리학적 스타일은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나 연극요소들(브레송이 시네마라고 칭한)로는 절망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걸 너무나도 잘 아는 감독의 결단이다. 사람은 절망이 너무 클때 오히려 정서적으로 마비된다. 브레송은 바로 그 마비를 포착한다. <사형수 탈출하다(1956)>에서 퐁텐이 밧줄을 꼬고 숟가락을 긁는 이유는 거기에 무슨 대단한 영웅적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탈옥을 안하면 죽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기계적 노동이다. 그가 조스트랑 같이 탈옥에 성공할때조차 브레송은 그걸 승리의 순간인거마냥 포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고 뒷모습은 막막하다.
에밀 시오랑 역시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절망을 포착한다. 그에게 글쓰기란 거창한 의미가 아닌 자살을 유예하기 위한 생존기술이다. 길게 설명할 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짧고 간결한 아포리즘으로 뚝뚝 끊어서 쓴다.
브레송과 시오랑의 공백은 해석 이전에 함께 있음을 요구한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절망 속에서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지기 위한 공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