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
-쇼펜하우어-
우리는 몸 전체가 건강한 건 느끼지 못하지만, 구두가 발을 꽉 조이는 그 작은 고통 하나는 즉각적으로 느낀다.
-쇼펜하우어-
(https://www.goodreads.com/quotes/7235753-just-as-a-brook-forms-no-eddy-so-long-as)
나쁜 사건이 좋은 사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상적인 사건, 주요 생활 사건(예: 트라우마), 친밀한 관계 결과, 소셜 네트워크 패턴, 대인 관계, 학습 과정에서 발견됩니다. 나쁜 감정, 나쁜 부모, 나쁜 피드백은 좋은 정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며, 나쁜 정보는 좋은 정보보다 더 철저하게 처리됩니다. 자아는 좋은 자아를 추구하기보다는 나쁜 자아 정의를 피하려는 동기가 더 큽니다.
(https://psycnet.apa.org/record/2018-70020-001)
일단 삶이(나쁨의 양과 분포를 모두 고려했을 때) 나쁨의 일정한 한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좋음의 양이 얼마나 되건 그것을 능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양의 좋음도 한계점을 넘어선 나쁨을 치를 만큼 가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베나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부정적인 경험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삶 전반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해 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여러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은 부정적인 경험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긍정적인 경험을 열거하였다. 이 선택적인 기억은 우리의 삶이 이때까지 얼마나 잘되어 왔는지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왜곡한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평가만이 편향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상이나 기대도 편향되어 있다. 우리는 사태가 얼마나 좋을 것인가에 관하여 과장된 견해를 갖는 경향이 있다.
-데이비드 베나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주체의 삶이 얼마나 좋게 또는 나쁘게 느껴지는지가 명백히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 실제 질에 관계없이 말이다. 만일 그것이 지속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명백히도 죽음을 선호할 만큼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설사 객관적으로는 죽는 게 더 낫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특정한 자살들을 존중하기 꺼리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들의 삶의 질을 과
소평가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위 경우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지각은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그들의 삶을 더 못하게 만든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들의 삶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 죽음을 선호할 정도가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의 지각이 오류일지라도 그래서 이런 면에서는 비합리적일지라도, 죽음에 대한 그들의 선호는 다른 면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다-그들의 삶이 얼마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를 감안할 때, 죽음은 그들에게 최선일 수도 있다.
-데이비드 베나타 <인간의 곤경> 중-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1934~2024)은 수면을 하지 않고 대장 내시경을 받을 때 환자가 60초마다 고통의 정도를 말하게 했다. 환자 A는 8분 동안 내시경이 진행되었고 환자 B는 24분 동안 진행됐다. 환자 A는 8분만에 끝났지만 끝나기 직전 고통의 정도가 8에 있었다(0은 ‘고통이 전혀 없음’, 10은 ‘고통스러워 참을 수 없음’이다). 반면에 환자 B는 10분 쯤에 8의 고통을 느끼기도 했으나 끝나는 24분에는 1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B의 대장 내시경 시간이 A의 3배 수준이다 보니 B의 고통 총량은 A보다 훨씬 많았다. A와 B 중 누가 더 고통스러웠다고 기억할까?
예상과 달리 답은 A이다. 실험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고통에 대한 기억은 대장 내시경 중 최악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마지막 고통 수준을 합한 평균으로 결정된다. 최악의 고통은 A, B 모두 8이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은 각각 7과 1이니 평균을 내면 A와 B는 각각 7.5와 4.5가 되어 A가 B에 비해 대장 내시경에 대해 나쁜 기억을 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고통의 기억에 지속 시간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장 내시경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나게 된 게 A에게는 불운이었던 셈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8261065?sid=110)
쾌락적 러닝머신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행복 수준이 크게 변동하지 않는 비교적 안정적인 생명체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나쁜 일이 발생한 후에도 상당히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줄 때 그 행복의 급증은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https://thedecisionlab.com/reference-guide/psychology/hedonic-treadmill)
노르웨이 오슬로대 심리학과의 시리 레크네스 박사는 예상한 것보다 고통의 강도가 덜할 때는 뇌가 고통을 실제보다 덜 느끼며, 심지어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4/2013030402857.html)
개인의 객관적인 복지가 더 못하게 변하면, 처음에는 상당한 주관적인 불만족이 생긴다. 그러나 이후에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여 자신의 기대를 그에 따라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데이비드 베나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