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허상

by 김명준

심리학자 Festinger의 사회적 비교이론 (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능력이나 의견 등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객관적인 지표가 없을 때는 비교를 통해 주관적인 평가를 얻으려 한다고 합니다. 즉 비교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5925)


가느다란 가지들을 올려다보니 너무 구부러져 있어서 들보나 서까래로 만들 수 없고, 그 거대한 뿌리를 내려다보니 속이 푸석푸석해서 관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 잎사귀들을 혀로 핥으면 입안이 헐어 상처가 생기고, 그 냄새를 맡으면 사람들을 사흘 동안이나 미쳐 날뛰게 할 것 같았다.


남백자기는 말했다. “이것이 바로 재목이 아닌 나무여서 이렇게 거대한 나무로 자랐구나. 아! 신인(神人)도 그래서 재목이 아니었던 거구나!”

-장자 <인간세>-


광범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진은 우연한 사건과 기회의 형태로 운이 개인의 결과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무작위성은 사람의 삶의 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https://www.linkedin.com/pulse/talent-vs-luck-role-randomness-success-failure-%E6%9D%8E%E5%8F%8B%E6%9D%B0-lee-you-jie-ym6yc)


우리는 12세가 12세에 적합한 규준으로 A를 받는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저명한 대학 물리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의 삶이 인간의 규준에서 잘되어 간다는 이유로 그 삶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으로 잘되어 간다고 자주 생각한다.

자기 삶이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에 관한 개인의 판단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되어가는지다.

적응과 비교는 낙천주의적 기준선으로부터 작용하게 되며 낙천주의 편향의 영향 하에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보다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 자신을 비교하기가 더 쉽다.

-데이비드 베나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이 방법을 따르면 최고의 대학에 갈 수 있다거나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확률에 관한 착각을 이용한 혹세무민이다. 자기 계발서가 정직하게 약속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것이다. ‘나에게 쓸모 있었고 근거가 있는 방법을 공유하니, 이 방법들을 활용하면 예전보다는 좀 더 효율적이고 쉽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도하는 자기 계발서들은 ‘구성의 오류’를 모른다. 한 사람이 어떤 방법을 써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같은 방법을 써서 동일한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보통은 그 반대이다. 목표로 삼은 성공이 본질적으로 희소한 것일 때, 사람들이 다 같이 최선의 전략을 쓰더라도 소수만이 성공의 달콤함을 맛볼 뿐이다. 예를 들어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확실한 방법을 여러 수험생들이 어김없이 따라한다면? 합격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 자기 계발 분야의 베스트셀러는 이 점을 말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착각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민열 <삶은 왜 의미 있는가>-


우선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들의 취향이 구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자(아래의 내용들은 「구별짓기」 1장을 참조할 것).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미술품이나 사진에 대한 독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코드와 암호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한 사회의 지배문화가 피지배문화를 압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은 미술품에 담긴 의미를 해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따라서 미술관에서 이러한 추상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통해서 전수되는 문화적 코드교육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학교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전달되는 미학교육 속에는 일정하게 틀 지워진 세계관이 암묵적으로 전제되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계급의 취향에 가까운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주말의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가는 계층으로부터 미술관에 가는 계층 사이에는 일정한 계급적 분류효과가 작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홍성민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 사회>-


취향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다는 이데올로기가 그럴 듯해 보이고 나름대로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일상의 계급투쟁에서 파생되는 모든 이데올로기 전략이 그렇듯이 실질적인 차이를 자연화하고=본성화하고 문화휙득양식의 차이를 본성의 차이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pp. 135-


유학자들은 하늘과 땅이 ‘의도를 가지고故’ 인간을 낳았다고 하지만, 이 말은 허황된 것이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기를 합할 때, 인간은 ‘우발적으로偶’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왕충 <논형>-


여러분은 최고의 권력을 얻고 높은 명성을 얻은 사람들도 자신이 가진 부보다 여유로운 삶을 갈망하고 꿈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은 별다른 위험만 없다면 아찔한 정상에서 내려오고 싶어한다. 행운이란 외부의 공격을 받거나 충격으로 흔들리지 않더라도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네카 <세네카의 인생론>-


쾌락은 따라서 도덕적 선(善)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라캉은 의도적으로 도덕적 선을 영어 'the good'으로 제시한다. 영어에서 '굿'은 도덕적인 '착함'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맥락에서의 '상품'을 의미한다. 쾌락은 도덕적인 선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안락'으로 그 뜻이 확장된다.(72)쾌락원칙은 희열을 회피함으로써 도덕공동체의 법을 준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쾌적함에 안주하는 성향을 띤다. 자본주의 너머는 쾌락 너머의 희열처럼 현실의 편안함을 파괴하는 위험한 대상일 뿐이다. 반면 자본주의 내부의 물질적 쾌락은 그 편리한 풍요로움으로 편안과 안락을 약속한다. 쾌락원칙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지배질서의 현상유지에 기여하는 보수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쾌락원칙을 넘어서려는 충동이 주체 속에 지울 수 없는 욕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희열의 금지는 금지를 위반하려는 욕망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쾌락에 안주하지 않고 희열을 만끽하려는 충동이 만족을 요구하며 끈질기게 지속된다. 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고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정도로 이 욕망은 집요하고 절실하다.

-김용수 <자크 라캉>-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객관적 진리’라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리에서 찾는 나타남의 형태를 수용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맹세이자 충실성으로서의 진리를 말합니다.

-마이클 마더 <식물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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