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놀이하는 존재라고 역설했던 적이 있다. 수단과 목적의 분리가 노동이라면 수단과 목적의 일치가 바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영화를 본다고 해서 쌀이 나오지도 과일이 나오지도 않지만 그 비생산적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고 놀이가 된다. 셀린느와 줄리가 극영화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고 다시 해체하는 이유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고 놀이이기 때문이다. 눈속임에 불과한 마술쇼, 픽션에 불과한 극영화는 곧 우리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