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1974, 자크 리베트

by 김명준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놀이하는 존재라고 역설했던 적이 있다. 수단과 목적의 분리가 노동이라면 수단과 목적의 일치가 바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영화를 본다고 해서 쌀이 나오지도 과일이 나오지도 않지만 그 비생산적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고 놀이가 된다. 삶의 중요한 부분은 쓸모없음에서 결정된다는 장자의 말처럼 비생산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일 수 있다. 셀린느와 줄리는 단순히 극영화를 보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슈타이너가 상상력은 나와 세계가 화합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던것처럼 그들은 극영화 속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면서 영화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몰락처럼 예술은 더이상 ‘원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접근성과 유희의 매체가 되었으며 셀린느와 줄리가 수동적 감상자에서 벗어나 능동적 구성자가 되는 장면이 바로 그 몰락을 증명한다. 눈속임에 불과한 마술쇼, 픽션에 불과한 극영화는 곧 우리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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